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끝난 4·7 재·보궐 선거의 특징 중 하나는 지난 20년간 현 여권의 ‘콘크리트 지지층' 역할을 해온 40대가 여야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하는 ‘스윙 보터’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497세대(1970년대 태어나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40대)는 20대였던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62.1%), 30대였던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66.5%)에게 표를 몰아줬다. 40대가 된 작년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64.5%의 몰표를 던졌다. 그랬던 40대 중 상당수가 이번엔 야당 쪽으로 돌아선 것이다.

◇촛불과 광장문화를 만든 X세대, ‘정치적 이탈’을 시작하다

1979년생 워킹맘 김여은(42)씨는 이번에 서울 시장 선거에서 야당에 투표했다. 김씨는 스스로를 “중학교 때는 서태지를 좋아했고, 대학생이 돼서 노무현에게 열광했다”고 소개했다. 대학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적으로 대선에 승리했을 때 환호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광화문에서 열린 광우병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오랫동안 민주당에 동지의식을 느끼고 지냈다. 조국 사태 이후로 줄곧 흔들렸지만 그래도 내가 야당 후보에게 투표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선배인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가 전대협 세대였다면, 40대는 한총련 세대다. 민주화가 완성된 시기에 대학을 다녔고, 페미니즘과 환경, 부의 재분배 문제 등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했다. 경제활동을 시작할 무렵인 20대 후반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했다. 이 무렵 글로벌 경제 위기를 경험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한창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나이에 MB를 겪었다. 이들에겐 MB 정권 하면 ‘차벽’ ‘부패’가 아직도 먼저 떠오를 것”이라고 했다.

문화적 풍요를 경험한 X세대로도 불린다. 월드컵을 거치며 광장문화를 익혔다. 2002년 효순이·미선이 추모 집회,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집회 등을 ‘촛불 문화제'로 이끌었고, 김어준 등이 이끄는 ‘나꼼수’를 통해 정치를 놀이처럼 소비하기 시작했다. 오랜 기간 현 여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자리 잡아 온 것이다.

이런 40대를 흔들기 시작한 게 조국 사태다. 이 전 최고위원은 “현 여당이 제대로 된 진보의 가치를 대변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이때부터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믿었던 것의 실체가 허상(虛像)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궐선거 벽보 철거 - 서울 은평구 진관동주민센터 직원들이 8일 은평뉴타운 벚꽃길 주변에 게시됐던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벽보를 철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삶이 나아질 거라는' 낙관이 꺾이다

지난 7일 친여(親與) 성향의 커뮤니티 게시판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박근혜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피해준 게 없는데, 문재인은 날 X되게 했다.”

40대는 진보적 가치를 추구해왔지만,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부동산·LH 사태 이후 이들이 이탈하게 된 이유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40대에게 ‘정치적 스트레스’를 줬다면, 문재인 정권은 임대차 3법 등을 밀어붙이면서 이들에게 ‘집값 폭등’ ‘전세 대란’ ‘세금 폭탄' 같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고통을 줬다는 것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는 “그동안 40대는 이미 계층 사다리를 뛰어넘길 포기한 20~30대, 이뤄놓은 것을 현 정권이 가져갈까 두려워하는 50대와 달리 내 삶이 그래도 더 나아질 거라는 낙관적 기대를 갖고 있는 세대였으나, 최근 부동산 대란을 겪으며 그 희망이 좀 꺾인 것 같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40대는 민주적 가치와 실리를 매우 중시하는 세대”라며 “실질적인 피해를 준 현 정권에 대한 응징을 표출한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네거티브 공세를 펼친 것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민주당의 한 보좌진은 “구태 정치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이 너무 싫었고, 그래서 표를 주기 싫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