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본격적인 정치 활동에 나섰다. 경제·외교안보·사회 분야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더니 최근엔 야당 정치인들도 줄줄이 접촉하고 있다. 6월 국민의힘 전당대회 이후 정치 참여와 대선 출마의 뜻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한다. 5명 안팎의 소규모지만 정치적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일정·메시지·홍보팀도 꾸릴 예정이다. 30대의 시사평론가 장예찬씨가 윤 전 총장의 외부 일정을 공개한 것도 이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윤 전 총장은 3월 총장직에서 물러난 후 지난달까지 주로 집에 머물며 각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 이를 위해 경제·외교안보·사회문화 분야 교수 및 전문가들과도 두루 만났다. 직접 만나기도 하고 사안별로 전화나 동영상 통화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검찰 등 법조계 출신 인사들도 윤 전 총장에게 조언을 하며 막후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관계자는 “윤 전 총장에게 정책적 조언을 해주는 각 분야 자문 그룹이 100명 넘는 것으로 안다”며 “윤 전 총장의 관심사가 다양한 만큼 자문그룹의 분야나 연령대, 성향도 각양각색”이라고 했다.
야권에선 윤 전 총장 주변에 검사 출신 등 법조인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없지 않다. 원로·중진 법조인들이 윤 전 총장의 멘토 역할이나 정무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검찰 출신 법조인들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거명되고 있다. 30년 간 검사 생활을 한 윤 전 총장 주변엔 어쩔 수 없이 검사와 판사 등 법조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야권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은 안 그래도 강성 검사 이미지가 강한데 핵심 참모까지 검사로 채워지면 곤란한 것 아니냐. ‘검사 정권’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고 했다.
재계에서도 윤 전 총장 주변에 검사 출신이 많은 것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윤 전 총장이 제일 잘하는 것이 결국 수사 아니냐”며 “윤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정의·공정’ ‘부정부패 일소’를 내걸며 대기업 등에 대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했다. 특히 한동훈 검사장 같은 윤 전 총장의 측근 인사가 검찰총장이 될 경우 대기업 총수들이나 CEO들에 대한 ‘줄소환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기업 관계자는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수사 당시 윤석열 검찰이 보여준 먼지떨이식 수사, 별건 수사에 기업들은 상당한 거부감이 있다”며 “오히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는 딜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야권 내부에선 “윤 전 총장이 캠프를 차리더라도 가급적 검사나 법조인 출신은 뒤로 빠지는 게 좋다” “윤석열 캠프에서 검사는 윤 전 총장 한 명으로 족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윤 전 총장도 이 같은 기류를 파악하고 가급적 검사 출신들과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과 가까운 인사는 “윤 전 총장이 평소 존경하고 가깝게 지내던 원로 검찰 인사들과 일부러 만나지 않고 있다”며 “윤 전 총장이 ‘선배들께 너무 연락을 못 드려서 오히려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캠프를 차리더라도 규모를 최소화하고 법조인보다는 젊은 전문가 그룹을 많이 두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이 독자 캠프를 꾸리기 보다 국민의힘에 들어가려는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외교관 중심으로 독자 캠프를 꾸렸다가 실패한 것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야당 현역 의원과 당 조직의 정무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정책 전문가 중심의 자문 그룹을 만든다면 검사 출신들을 앞세우지 않고도 무리없이 대선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대선을 준비하면서 경제 분야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국민들 사이엔 “윤 전 총장이 수사는 잘 했지만 경제는 뭘 알겠느냐. 나라 경제를 제대로 이끌어 가겠느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윤 전 총장도 이를 의식해 적지 않은 시간을 경제 공부에 할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각 분야 경제 전문가로 자문단을 꾸릴 준비도 하고 있다. 그래서 야당 의원 중 젊은 경제 전문가인 윤희숙 의원을 가장 먼저 만났다. 부동산 전문가인 유현준 교수, 골목상권 전문가인 모종린 교수 등을 만난 것도 부동산 및 자영업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 전 총장이 과연 경제 정책 비전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여전하다. 야권 관계자는 “윤 전 총장의 경제 정책 방향은 간단하다. 실패한 문재인 정부와 반대로만 가면 된다”고 했다. 자영업자와 중소 상공인들에게 큰 피해를 줬던 반(反)시장적 소득주도성장 정책, 세금 폭탄과 규제 일변도로 밀어붙였던 부동산 정책, 혈세만 쏟아부은 저질 일자리 정책부터 근본적으로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비판해온 대표적 전문가들인 윤희숙 의원과 유현준·모종린 교수 등을 만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외교안보 분야 정책을 자문하는 전문가들도 현 정부의 ‘오로지 북한’ 기조와 대중·대일 외교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많다. 외교안보 정책도 ‘반(反) 문재인’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