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 1단의 100초간 지상연소시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순수 독자기술 개발로 이뤄낸 것이다. 금년 10월 발사 목표로 하는 누리호의 성공 가능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
그 시점 우주센터 계측통제동에서 시험 결과를 분석하고 있던 조광래 전(前) 원장에게 과기부의 ‘중징계요구서’가 날아들었다. 그는 2013년 한국 최초의 우주 로켓 ‘나로호’ 발사를 성공시킨 주역이었다. 그가 왜 감사의 표적이 됐을까.나로호는 두 번 실패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발사도 실패했다면 로켓 개발 얘기는 더 이상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세 번째 발사를 며칠 앞두고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로 내려가 그를 만난 적 있었다. 당시 그는 나로호발사추진단장이었다. 발사 예정일 두 달 전부터 나로도에 내려와 연구원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로켓의 성공과 실패는 발사 후 순식간에 판가름 난다. 컴퓨터상 모든 수치가 완벽해도 신(神)의 장난이 개입할 수 있다. 그 중압감이 어떻겠는가. 그는 호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사실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이까짓 걸 못 버텨’ 했지만, 결국 신경정신과에 갔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우리 연구원에서 ‘아리랑 3호 위성’ 책임자와 ‘천리안 위성’ 책임자도 나와 같은 병원을 다녔다. 어느 한순간에 심장이 마구 뛰고 숨이 가빠진다. 갑자기 죽을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온다. 이 증상이 오래 되면 조짐을 느낀다. 그때마다 비상약을 복용한다.”
그는 1995년부터 로켓 연구의 대표 주자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이 분야에 전문 인력이 없었다. 사명감만 있고 아는 것은 부족했다. 당시 그는 딱 두 번 휴가를 갔다고 했다. 두 번째는 아들이 고2가 됐을 때다. 아내가 ‘당신 일도 좋지만 너무 그렇게 하면 자식과 추억이 없다’고 해서 휴가를 갔다는 것이다.세 번째 나로호 발사는 성공했다. 이듬해 그는 항우연 원장으로 임명됐다. 임기를 마친 그는 연구위원으로 한국형 로켓 ‘누리호’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말 과기부 감사팀은 이런 그에게 금전 비리 의혹이 있다며 연구용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USB에 담아 정밀 감사를 했다. 감사팀이 기대했던 성과(?)가 없자, 올초에는 ‘누리호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추력(推力) 75t 액체엔진을 수출하려 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고강도 감사를 실시했다. 법령이나 규정을 위반한 비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항우연 원장 재임 시절(2014.10~2017.10)에 항공전문가를 비정규직 시간제로 특별 채용한 것이 ‘직권남용’이라며 항우연에 중징계를 요구한 것이다. 별정직 시간제 특채는 우수한 전문 인력을 비상근· 비정규직(주 20시간 미만)으로 활용하는 제도다. 별도 위원회의 심의 없이 원장이 해당부서장에게 추천해 채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내규에 되어있다.이런 특채는 조 전 원장 재임 시기에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6년부터 14명에 대한 특채가 이뤄졌다. 그동안 과기부는 이를 문제 삼은 적 없었다. 오히려 과기부 출신 공무원에 대한 특채를 종용했다고 한다.그가 뽑은 H씨는 대한항공 본부장 출신으로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이었다(현재는 모 대학 무인기공학과 교수). H씨의 채용 기간은 2017년 9월~2018년 2월까지 불과 다섯 달이었다. 설령 문제가 있었다 해도 징계 시효 자체가 지난 사건이었다.
과기부 감사팀은 이를 ‘직권남용’으로 몰아갔다. 조 전 원장이 친분 있는 H씨의 청탁을 받아 자질이 부족한 데도 채용했다는 것이다. 해당본부장이 직접 언급하지 않은 ‘조 전 원장이 청탁전화를 받아‥’라는 문구를 진술서에 임의로 집어넣었다고 한다.
’나로호 발사 성공'의 주역인 그는 왜 세 번이나 과기부의 표적 감사 대상이 됐을까. 그의 후임으로 들어온 L원장(2018년~2021년 1월)과의 갈등에서 시작된 것은 틀림없다.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 정년퇴임을 앞둔 책임연구원 L씨가 원장으로 임명됐다. 한참 전에 항우연 부원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능력을 갖췄다고 하지만 65세 나이에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장(長)이 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한다. 그의 부인이 김정숙 여사와 숙명여고 동창이었다. 항우연 관계자들의 말로는 L원장은 조광래 전 원장이 이끌어온 우주발사체(로켓) 개발 조직에 대해 개인적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원장에 취임하자 우주발사체 개발 조직을 해체하는 수준의 개편을 시도했다. 하지만 발사체 개발 연구원들의 반발로 중단됐고 조직 분위기만 나빠졌다.
과기부의 감사까지 불러들인 것은 L원장의 술버릇이었다. 그는 발사체 개발 간부들과의 술자리에서 수차례 폭언과 폭행을 행사한 걸로 알려졌다. 평소 품고 있던 감정이 폭발했을 수 있다. 이를 보다 못한 조 전 원장이 나서서 국민신문고에 ‘갑질 신고’를 했다.관리감독기관인 과기부가 해당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과기부 공무원의 다음과 같은 언행이 문제를 더 키웠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폭행이라 하면 진짜 후려갈기는 거다, 단순히 툭 치거나 휙 집어 던지는 거는 애교고, 진짜로 주먹질이든 뺨이든 기본이 주먹 아니면 뺨이겠지요…“ ”폭언이야 일반 직장인들에게 많이 있잖아요, 저도 여기서 이XX는 일상적으로...”
안주를 집어 던지거나 가슴을 치고 팔을 깨무는 것은 폭행이 아니라는 취지로 대충 넘어가자, 조 전 원장이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갈등이 항우연 바깥으로 새나갔다. 작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이 사안이 정식 거론됐다. L원장은 폭언·폭행과 관련된 야당 의원의 질의에 이렇게 답변했다. ”부덕의 소치로 죄송한 말씀을 금할 수 없지만 원인을 이야기 않고 그것만 말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부인이 숙명여고 출신인 것으로 아는데, 영부인과 친해서 원장 되기 전에도 (원장) 선임에 문제가 없다고 얘기했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영부인과 친분이 있다고 말한 사실은 없으며, 보수 쪽인 친구들이 그 같은 소문을 악의적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야당 의원이 과기부에 이 사안에 대한 특별 감사를 요구했고 과기부는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과기부는 ‘품위 유지 위반’ 등으로 L원장의 해임 권고를 결정해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통보했다. 과학기술위원회는 회의를 열어 ‘3개월 감봉’으로 최종결정했다. 그 결정이 났을 때 그의 원장 임기는 딱 사흘이 남아있었다. 지난 1월 23일 퇴임했다. 과기부는 동시에 조 전 원장에 대한 감사도 시작했다. L원장의 폭언·폭행 건을 제기했다는 게 빌미가 됐는지 모른다. 과기부는 결코 ‘보복성 감사’가 아니라고 하지만, 청와대의 어떤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앞서 말한 대로 금전 문제와 관련된 두 번의 감사가 허탕 치자, 이번에 비정규직 전문가 특채 건을 ‘직권남용’이라며 중징계 요구를 해온 것이다.
그 뒤 스토리는 계속된다. 항우연에서는 ‘조 전 원장이 권한을 남용한 근거가 없다’며 재심의를 요청했다. 지난 8일 과기부는 ‘재심의 결과 이의신청을 기각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거듭 중징계를 요구한 것이다. 재심의 결과문을 읽어보니 워낙 한심해 ‘과기부는 왜 이러나’ 싶을 정도였다. 설령 전문가 특채(2017년 9월~2018년 2월) 건을 문제 삼는다해도 징계 시효(3년)가 지난 것이었다. 그런데도 과기부는 2018년 7월 개정된 취업규칙(징계 시효를 3년에서 5년으로 바꿈)을 소급적용해 ‘징계 시효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통보해왔다. 이런 소급 적용은 법적으로 할 수는 있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된다. 조광래 전 원장 건(件)은 어떤 식으로든 꼭 손봐야 할 그런 예외적인 경우가 된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과기부 뒤에 어떤 힘이 작용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