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감사원장이 야권의 제3후보로 급격하게 부상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놓고 고심 중인 최 원장은 조만간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X파일 문제로 공격받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흔들릴 경우 그 대안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상황이다. 야권 내부에서도 최 원장에게 출마를 권유하면서 외곽 지원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최 원장의 최대 지원 세력은 부산·울산·경남의 전·현직 의원 그룹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최 원장의 고향(출생지)이 경남 진해라는 지역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의 부친은 6·25 전쟁 때 우리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호를 타고 최초 해전인 대한해협 해전에서 승전을 일궈낸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이다. 아버지가 해군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최 원장도 진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 최영섭 예비역 대령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 땅이 된 강원도 평강이다. 최 원장은 학교는 서울(경기고, 서울대)에서 나왔다. 그래서 완전히 부산경남 사람이라고 하긴 힘들다. 하지만 이 지역 출생이란 연고가 있기 때문에 ‘부울경’ 지역에서 최 원장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선에서 PK(부울경)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인구가 많을 뿐 아니라 스윙 보터의 성격도 있다. PK에서 최소한 30~40%를 득표하지 않으면 대선에서 이기기 힘들다. 그래서 PK 표심을 잡는 사람이 대선에서 이긴다는 ‘PK 필승론’도 있다. 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도 PK 출신이다. 최 원장도 출생지가 경남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리한 지역적 기반을 갖고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이다. 반기문 전 총장에 이어 다시 한번 충청도 출신이 대선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충청 지역의 기대감이 적지 않다. 야권에선 “윤석열 전 총장에게 충청 대망론이 작용하고 있다면, 최 원장에겐 다시 한번 ‘PK(부울경) 대통령’을 만들어 보자는 기대감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충청 대망론이냐 PK대망론이냐 라는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36세의 나이와 ‘0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당대표 선거에서 이긴 데에는 “이준석이 대구경북(TK)의 아들”이라는 TK 지역 지지층의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 대표의 부친과 모친 모두 대구 경북 출신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 기반은 그만큼 중요한 요소다.
최 원장을 직간접적으로 지지하거나 기대감을 표시하는 인사들도 PK 출신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원장을 직접 만나 대선 출마를 권한 것으로 알려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부산 출신이다. 최 원장을 측면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무성 전 대표도 부산이다. 정 전 의장은 최 원장이 출마할 경우에 대비해 지원 조직도 만들 채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늦추면서 국민의힘 합류를 계속 미룰 경우, 부울경 의원들이 최 원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 원장이 윤 전 총장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야권 내부의 개헌파가 최 원장을 지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최 원장이 대통령이 되면 임기 5년 중 2년만 하고 2024년 총선에서 내각제를 도입하는 개헌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최 원장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없고 부친으로부터 ‘국가에 충성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면서 “자신의 임기를 포기하는 개헌을 검토중이라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었는데 윤 전 총장에겐 그런 생각이 있는지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동안 ‘대통령 임기 단축, 내각제 개헌’을 주장해 왔는데 최 원장이 그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기대감을 비친 것이다. 정의화 전 의장도 야당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다. 다만 최 원장이 정말 개헌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야권에선 최 원장이 윤 전 총장에 비해 보수층 내부의 거부감이 적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이명박 정부에 대한 적폐 수사를 주도했다. 그래서 일부 친박과 강성 보수층에서 상당한 거부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반면 최 원장은 그런 과거가 없고 성향도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원장 출마의 최대 걸림돌은 감사원장 임기가 아직 6개월 가량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장 임기는 헌법에 보장돼 있다. 또 감사원장 자리는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이다. 그런 감사원장이 임기도 끝나기 전에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 그만두느냐는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여권에선 벌써부터 “과거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감사 등도 대선 출마를 위한 의도로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최 원장도 이런 비판을 충분히 알고 있고, 이를 넘을 수 있는 출마 명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최 원장 주변 인사는 “최 원장이 월성 감사를 하면서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상당한 외압을 받았고 감사위원 인사 때도 김오수 전 법무차관(현 검찰총장)을 제청해 달라는 압박을 받았다. 이런 정치적 외압으로 감사원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상황이 다시 오지 않게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출마한다는 명분을 세울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