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29일 “모든 국민과 세력이 힘을 합쳐 반드시 정권 교체를 이뤄내야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3월 4일 총장직에서 사퇴한 지 117일 만이다.
윤 전 총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했다. 그는 “문재인 정권은 권력을 사유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을 연장하며 계속 국민을 약탈하려 한다”며 “국민은 다 안다. 더 이상 이들의 기만과 거짓 선동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은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경제 상식을 무시한 소득 주도 성장, 시장과 싸우는 주택 정책,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시킨 탈원전,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수많은 청년, 자영업자, 중소기업인, 저임금 근로자들이 고통을 받았다”며 “이 정권이 저지른 무도한 행태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북한이 폭침한 천안함 생존 장병 등에 대한 홀대 논란과 한·일 갈등 사태 등을 지적하며 현 정부의 외교·안보 및 보훈 정책도 강하게 비판했다.
윤 전 총장은 연설 후 기자들과 일문일답에서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물음에 “이 자리서 답변하기 어렵다”면서도 “자유민주주의 등 국민의힘과 정치 철학 면에서는 생각을 같이한다”고 했다. 8월 말 시작하는 국민의힘 대선 경선 참여를 위한 입당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최근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 이른바 ‘윤석열 X파일’과 관련해서는 “문건을 보지 못했지만, 선출직 공직자 후보는 무제한 검증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합당한 근거나 팩트 없는 일방적 마타도어를 유포하는 것에 대해선 국민께서 판단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선언을 혹평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윤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한 데 대해 “그런 정부의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이 자기 부정을 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무능한 검사의 넋두리”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훌륭한 연설로 정권 교체 의지가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윤 전 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거론하며 “언제든 환영 꽃다발을 준비해두고 있다”고 했다. 이날 윤 전 총장 대선 출마 선언 기자회견에는 정진석·권성동 등 국민의힘 의원 20여명이 참석했다.
“소주성·탈원전으로 국민 고통… 내 정치철학은 국민의힘과 같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29일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자유라는 가치에 있어 국민의힘과 (저의 가치가) 같다”며 야권 연대에 문을 열어뒀다. 또 한·일 관계와 관련해 “죽창가를 부르다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경제 문제에선 자신이 만난 ‘마포 자영업자’를 거론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 정책을 설명했다. 정치권에선 “정권 교체라는 선명한 메시지에 비해 미래 비전과 정책은 아직 원론적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힘 입당 “국민의힘과 자유민주주의 가치에 동의”
윤 전 총장은 이날 국민의힘 입당 여부와 관련한 질문에 “저는 굉장히 자유를 중시한다. 인류 역사에서도 자유가 보장된 도시는 번영을 이뤘다”고 했다. 정치적 선택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자유’란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이란 정당이 과거 탄핵도 겪었고, 국민 보시기에 미흡하다고 여기실 수 있다”면서도 “자유라는 가치에 있어 국민의힘과 (저의 가치가) 같다”고 했다. 그는 다만 국민의힘 대선 경선 참여와 관련해선 “이 자리에서 답변 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야권 통합과 관련해선 “열 가지 중 아홉 가지 생각이 달라도 한 가지 ‘정권교체’에 생각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했다
북한, “북한은 주적이지만 평화엔 협력”
그는 대선 출마 연설 도입부에서 “천안함 청년 전준영은 분노하고 있었다. K-9 청년 이찬호는 억울해서가 아니라 잊히지 않기 위해서 책을 썼다”며 “살아남은 영웅들은 살아 있음을 오히려 고통스러워했다”고 했다.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인 전준영씨와 지난 2017년 K-9 자주포 폭발 사고의 피해자 이찬호씨를 거론하며 보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날 북한과 관련해선 “저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 북한을 주적이라고 규정했다”면서도 “한반도의 지속적 평화 구축에 협력할 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김정은에 대해선 “한 국가의 지도자에 대해 막연한 환상이나 부정적 생각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그 행위를 보고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한미동맹, “전쟁을 반도체 칩으로 하는 시대”
윤 전 총장은 이날 “국제사회는 인권과 법치,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만 핵심 첨단 기술을 공유하는 체제로 급변하고 있다”며 “이제는 전쟁도 총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반도체 칩으로 싸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에서도 대한민국이 문명국가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확고한 정체성을 보여줘 적과 친구, 경쟁자와 협력자 모두에게 예측 가능성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주도하는 ‘민주주의 가치 동맹’에 들어간다는 명확한 신호를 중국·북한에 줘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한일 관계에 대해선 “외교는 실용주의, 실사구시, 현실주의에 입각해야 하는데 이념 편향적 죽창가를 부르다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죽창가는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노래로, 지난 2019년 일본이 수출 규제 보복 조치를 발표하자 조국 전 법무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려 유명해졌다.
경제정책 “지속 성장이 중요... 종부세 재검토 해야”
윤 전 총장은 이날 출마 선언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 상식을 무시한 소득 주도 성장, 시장과 싸우는 주택정책,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시킨 탈원전, 매표에 가까운 포퓰리즘 정책으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날 ‘지속 성장’이라는 자신의 경제정책 키워드도 공개했다. 그는 “저는 성장을 해야 복지도 해야할 것 아니냐는 생각에 대해선 조금 거리를 두고 있다”며 “저는 지속 가능성에 방점을 두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복지와 성장은 지속 가능성 하나로 묶을 수 있다고 본다”며 “복지를 위해선 성장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주택 문제와 관련해선 “주거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종부세를 상위 2%로 상향하느냐 안 하느냐를 하는 문제는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론이 안 좋으니 최후의 부자들한테만 때릴 테니 걱정 말라고 해야 할 게 아니다”라고 했다.
X파일 논란 “무한 검증 받겠다, 단 팩트에 기초해야”
윤 전 총장은 이날 자신과 처가를 둘러싼 이른바 ‘X파일’ 논란과 관련해 “X파일 문건을 아직 보진 못했지만 선출직 공직자로 나가는 사람은 도덕성에 대해 무제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그런 검증은 팩트에 기초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질문엔 “현직 대통령이 판단해야 할 문제”라면서도 “(각각) 연세도 있고 또 여자 분인 두 전직 대통령의 장기 구금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국민이 많다. 저 역시 그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했다. 윤 전 총장이 검사 시절 두 전직 대통령을 수사했지만, ‘정치인 윤석열’로서는 사면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