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대선 및 정치 관련 여론조사가 쏟아지고 있지만, 조사 회사나 조사 방법에 따라 결과가 들쭉날쭉 나오고 있다. 정치권이나 대선 주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과만 앞세우면서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얼마 전까지는 전화면접원 조사와 ARS(자동 응답 시스템) 조사 등 방법의 차이 때문이란 해석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같은 조사 방식의 결과도 차이가 큰 경우가 많아졌다. 정치권이 당내 경선이나 후보 단일화 등 중요 정치 결정을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날림 여론조사’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너무 많은 여론조사가 쏟아지면서 조사 회사들이 시간에 쫓겨서 결과가 부실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최근까지 약 7개월 동안 공표된 20대 대선 관련 여론조사는 총 200개였다. 유권자가 거의 매일 새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접한 셈이다. 7월 들어 22일까지 3주일간 공표된 대선 관련 여론조사는 40개로 하루 평균 1.8개로 늘었다. 5년 전에 지금처럼 대선을 7개월 남긴 시점이던 2016년 9월 한 달간 공표된 대선 관련 여론조사가 13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3배나 증가했다.

/그래픽=양인성

요즘엔 매주 또는 매달 정기적으로 정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언론 및 조사 회사도 13곳에 이른다. 대통령과 정당, 대선 후보 등 지지율 보도가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나올 때마다 인터넷 댓글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선 “특정 조사 회사의 여론조사가 왜 그렇게 쉴 새 없이 보도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불만도 많다. 여론조사 업계에선 “안 그래도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 특정 회사들의 반복적 발표로 ‘여론조사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여론조사 회사들의 난립으로 경쟁이 격화하면서 여론조사 결과 품질도 저하되고 있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조사 회사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서로 ‘가격 낮추기 덤핑 경쟁’으로 ‘품질 경쟁’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 결과 질 낮은 조사 결과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여심위에 등록된 선거 여론조사 회사는 76개에 달한다. 1990년대 초에는 여론조사 회사가 10여 개에 불과했지만 30년 만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우리나라처럼 법으로 여론조사위원회를 설치해 관리·감독하는 프랑스의 경우엔 정치 여론조사 회사가 13개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에도 일본여론조사협회에 등록된 회사는 20개에 그쳤다.

여심위의 선거 여론조사 회사 등록 기준이 너무 느슨한 것도 문제다. 현재 등록 요건은 ▲전화 면접·전화 자동 응답 조사 시스템 ▲분석 전문 인력 1명 이상 등 3명 이상 상근 직원 ▲여론조사 실시 실적 10회 이상(설립 1년 미만은 3회) 또는 최근 1년간 여론조사 매출액 5000만원 이상 ▲조사 시스템·직원 수용이 가능한 사무소 등이다. 이런 기준으로는 충분한 기술력을 지니지 못한 회사들도 등록할 수 있어서 여론조사 업계의 진입 장벽이 너무 낮다는 견해가 많다. 조사 회사의 난립에는 정당들의 여론조사 과잉 의존도 영향을 미쳤다. 선거 여론조사가 ‘돈벌이’가 되는 풍토 때문에 질 낮은 조사를 양산하는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아졌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여론조사의 품질과 상관없이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일희일비하며 들썩거리고 있다. 여야 후보 진영에선 입맛에 맞는 조사 결과만 내세우고 불리한 조사는 “믿을 수 없다”며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는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은 조사 회사들이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며 “조사 회사의 난립으로 인한 천차만별의 여론조사 양산은 정보 문화를 혼탁하게 하고 민주주의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모든 조사가 다 엉터리는 아니다”라며 “여론조사의 옥석을 잘 가려서 추세를 살핀다면 선거 판세를 읽는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