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호랑이를 배경으로 임기 마지막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집권 5년의 성과를 부각하는 데 많은 비중을 할애했다. 공수처의 광범위한 민간인 통신 조회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 채 “권력 기관 개혁 제도화에 성공했다”고 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임기 마지막 신년사에서 K방역, 경제 등 지난 5년간 성과는 적극 부각하면서도 최근의 탈북자 월북 사태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통신 조회 등에 대해선 침묵했다. 국민의힘은 “5년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던 자화자찬, 딴 세상 인식이 마지막 신년사까지도 반복됐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상황은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또 “평화는 튼튼한 안보 위에서 가능하다”며 “우리 정부는 대화와 함께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방력을 튼튼히 했다. 그 결과, 종합 군사력 세계 6위로 평가되는 강한 방위 능력을 갖추게 됐다”고 했다. 불과 이틀 전 동부전선 최전방에서 월북 사건이 일어났는데 “국방력은 튼튼하다”고 자랑을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의 통신자료 논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권력기관 개혁 추진을 성과로 내세웠다. 문 대통령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인수위 없이 출범한 우리 정부는 무너진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며 “권력기관이 더 이상 국민 위에서 군림하지 못하도록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권력기관 개혁을 제도화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인정하는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대열에 합류하며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K방역과 경제 성과도 다시 꺼내 들었다. 단계적 일상 회복 도중 확진자와 위중증자가 폭증해 거리 두기를 강화한 것을 사과했던 때와는 달라진 태도다. 문 대통령은 “모든 나라가 함께 코로나를 겪으니 K방역의 우수함이 저절로 비교됐다”며 “대한민국은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꿨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을 굳건히 했다”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연 데 이어, 지난해 3만5000달러로 올라섰고, 4만달러 시대를 바라보게 됐다. 대한민국은 지난 70년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가 됐다”고 했다. 이어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 문화 역량 등 다방면에서 ‘세계 톱 10′ 국가가 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폭등과 관련해선 “최근 주택 가격 하락세를 확고한 하향 안정세로 이어가면서 실수요자들을 위한 주택 공급에 속도를 내겠다”며 “다음 정부에까지 어려움이 넘어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3월 대선에 대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며 “적대와 증오와 분열이 아니라 국민의 희망을 담는 통합의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동안 정치 중립을 강조하며 자제했던 대선 얘기를 거론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께서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해 주시고 좋은 정치를 이끌어 주시기 바란다”고도 했다.

신년사가 끝난 뒤 화상으로 진행된 인사회에는 5부 요인, 정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성과를 이어받아 국민 행복을 위해 중단 없는 발전을 이뤄 나가겠다”고 했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지만 해는 반드시 떠오른다”고 말했다. TV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나온 모니카와 립제이, 가수 알리도 참석했다.

야당은 일제히 대통령 신년사를 혹평했다. 국민의힘 황규환 중앙선대위 대변인은 논평에서 “의회 폭거와 법치 파괴로 삼권분립을 훼손시키고서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이야기하고, 야당 의원과 언론인, 민간인에 대한 무더기 불법 사찰을 자행하는 ‘괴물 공수처’를 탄생시키고서 ‘권력기관 개혁’을 치켜세웠다”고 했다. 이어 “새해 벽두부터 군의 경계 실패가 드러났지만 질타는커녕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국방이 튼튼해졌다’는 허언(虛言)으로 국민을 기만했다”고 했다. 정의당은 “대통령 신년사에 있는 것은 자화자찬이고, 없는 것은 지금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공감과 위정자로서 진솔한 성찰”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