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광복회장이 독립유공자 자녀 장학금으로 써야 할 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국가보훈처 감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사진은 2020년 8월 20일 김 회장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원웅 광복회장은 최근 제기된 국회 카페 수익금 횡령 논란 등에 대해 “제보자의 개인 비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0일 국가보훈처 감사 결과 이 같은 의혹은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독립유공자 자녀들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이 ‘돈세탁’을 통해 김 회장 비자금으로 전용됐고, 김 회장 가족회사는 광복회 사무실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김 회장과 광복회는 이날 사과·유감 등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보훈처는 이날 “독립유공자 자녀를 위한 장학금 목적으로 운영돼온 국회 카페 수익금이 김 회장 통장으로 입금됐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광복회가 국회 카페 중간거래처를 활용, 허위 발주나 원가 과다 계상 등의 수법으로 6100만원을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이외 카페 현금 매출을 임의 사용하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자금 규모는 향후 경찰 수사를 통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보훈처는 “비자금 중 1000만원은 김 회장 통장으로 입금돼 여러 단계를 거쳐 현금화한 후 사용됐다”며 “나머지 자금은 필요할 때마다 중간거래처가 대납하게 하는 방식으로 집행됐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전형적인 자금 빼돌리기 수법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돈으로 김 회장의 한복과 양복 수 벌을 구입한 것으로 보훈처는 판단했다. 김 회장이 광복절이나 3·1절 행사 때마다 입고 나왔던 한복 여러 벌이 비자금으로 구입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김 회장의 이발비나 마사지 요금이 비자금에서 지불된 사실도 확인됐다. 또 김 회장이 개인적으로 강원 인제에 설립한 협동조합 ‘허준 약초학교’ 공사비나 장식품 구입에도 비자금이 사용됐다고 한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다양한 한복을 입고 행사에 나온 모습./사진=뉴스1·뉴시스

보훈처는 비자금 조성·유용 혐의와 관련, 김 회장을 상대로 1차 서면, 2차 대면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김 회장은 “절대 내가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다. (제보자인) A씨가 과잉 충성을 하느라 제멋대로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후 사실을 안 뒤에 금액을 모두 채워넣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광복회 수익금이 전용됐고 김 회장 개인용도로 사용된 것은 맞지만, 본인이 시킨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김 회장 며느리, 조카, 처조카가 임원인 골재 회사가 광복회관에 몰래 사무실을 차려두고 공공 기관을 상대로 영업 활동을 벌였다는 의혹도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골재 채취 업체 ㈜백산미네랄이 광복회 사무실·집기를 5개월간 무상으로 사용했고, 이 업체 영업을 위해 광복회장 명의로 국방부·여주시청 등에 발송된 공문도 실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회장은 이와 관련해서도 자신의 처조카 등이 자신의 승인을 받지 않고 한 행위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훈처는 김 회장이 해당 업체 활동에 상당 부분 관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보훈처는 “비자금 조성·운용, 골재기업 관련 비위에 대한 광복회장의 지시·승인·묵인 여부는 수사를 통해 확인될 것”이라며 “수사 결과에 따라 비자금 사용액은 전액 환수 조치토록 할 것”이라고 했다. 광복회의 국회 카페 수익 사업도 허가를 취소할 방침이다.

앞서 TV조선은 김 회장이 2년 8개월간 광복회장으로 재임하면서 9000만원을 법인카드로 썼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을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주말에 자신이 운영하는 협동조합이 있는 강원 인제에서 법인카드를 쓴 내역이 상당수 발견됐다는 것이다. 보훈처는 이와 관련해서도 “추가적으로 수사기관과 협조해 사실을 밝히겠다”고 했다.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광복회 이름에 먹칠을 한 김원웅 회장은 사퇴하라”고 했다. 광복회 정관을 보면 총회 구성원 절반 발의로 임시 총회를 소집하고, 재적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회장을 해임할 수 있다. 일부 광복회원은 이에 따라 총회 소집을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