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갈등, 이른바 신구(新舊) 권력의 충돌은 ‘대선의 연장전’을 암시하고 있다. 0.73%포인트 차이로 5년 만에 정권교체를 당하는 청와대 입장에선 윤 당선인 측에 무조건 협조하기가 썩 내키지 않을 것이다. 한편 윤 당선인 측은 ‘점령군’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애쓰면서도 청와대를 향해 불쾌한 내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선 양측의 갈등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다시 충돌하면서 또 한 번 사활을 건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선의 연장전’이란 표현은 이전에도 쓰여 왔다. 박근혜 정권 초기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여야 간 정쟁이 1년 가까이 이어지자 정치권에선 “대선 이슈를 가지고 언제까지 싸울 것이냐”는 말이 나왔다. 당시 새누리당은 선거에서 패한 민주당이 대선 기간 불거진 사건으로 패배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 상황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두 달 이후 치러진 당시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대통령을 지켜달라”며 호소하는 선거운동을 펼쳤다. 대선이 끝난 지 한참 지난 뒤에도 정당 간 극심한 갈등 국면이 이어지자 정치권에서는 자연스럽게 ‘연장전’이라는 말이 나왔다.
2018년 지방선거 때도 대선의 연장전이란 표현이 붙었다. 당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60~70%대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단일대오를 갖춘 민주당은 대선 승리 후 1년 만에 지방선거를 맞이했다. 반면 보수 야권은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으로 나뉘어 분열된 상태였다. 지방선거 하루 전날이던 2018년 6월 1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외교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지만, 국내 여론은 문 대통령이 ‘중재자(Negotiator)’ 역할을 해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북 정상회담 직후(2018년 6월 둘째 주)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79%였다. 결국 당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광역단체 17곳 중 14곳을 가져가며 대승을 거뒀다.
박근혜·문재인 정권에서 치러진 두 차례 지방선거는 대통령의 임기가 1년여 지난 시점에서 신임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업은 여당과 그 후광을 차단하려는 야당의 경쟁이었다. 반면 이번 6·1 지방선거는 대선 후 3개월, 새 대통령 취임 후 3주 만에 치러진다. 아직 날이 서 있는 신구 권력의 경쟁이 또 한 번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 연장전의 성격이 한층 더 강하다. 현재 청와대와 당선인 측의 대립 국면도 이 연장전의 일부라는 관측이 많다. 결국 신구 권력 간 대결의 승패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결판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으로서는 이번에 확실히 ‘끝내기’를 해야 할 입장인 반면, 민주당으로서는 ‘뒤집기’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청와대와 인수위 측의 갈등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인사 문제 등으로 인해 터져 나오고 있다. 시작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었다. 윤 당선인 측은 당선 직후부터 집무실 이전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윤 당선인은 지난 3월 20일 당초 논의되던 정부서울청사나 외교부 청사가 아닌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으로 방향을 정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청와대가 제동을 걸었다. 문 대통령은 3월 21일 “새 정부 출범 전까지 국방부, 합참,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등 보좌 기구, 경호처 등을 이전한다는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며 사실상 용산 이전 계획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지방선거 앞둔 주도권 싸움
지난 3월 23일에는 한국은행 총재 지명을 두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문 대통령은 신임 한국은행 총재에 이창용 IMF(국제통화기금) 국장을 지명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윤 당선인 측 의견을 들었다”고 했지만, 인수위는 “협의한 적 없다”고 곧장 반발했다. 그러자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인사 합의 여부를 두고 진실 공방까지 벌였다. 3월 24일 현재 대선이 끝난 지 15일이 지났지만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지난 3월 16일 양측의 회동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만남 4시간 전 급작스럽게 취소된 바 있다. 일각에선 대통령과 당선인이 아예 만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대선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극심한 분열 국면이 대선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퇴장하는 권력이다. 윤 당선인 측의 일부 요구사항이 무리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정권교체를 ‘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되새겨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새 정권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국민적 분열에 청와대가 앞장서는 모양새다. 새 정권에 통합과 협치를 도와주겠다는 의지보단 “네 뜻대로 되나 보자” 하는 투지가 더 강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선 직후엔 “오직 국민만 믿고 국민의 뜻만 따르겠다”던 윤 당선인 측 역시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같은 국가 중대사를 너무 급하게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렇게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청와대와 당선인 측이 맞서는 데는 0.73% 격차의 대선 결과에서 비롯된 ‘주도권 싸움’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은 갈팡질팡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대선 결과에 대해선 나름 선방했다는 기류가 강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만약 민주당이 우위를 점한다면 새 대통령과 여당을 조기에 무력화해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선거다. 이 중 한 자리라도 승리한다면 172석의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의 임기 초반부터 강력한 야당의 존재감을 가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민주당은 대선 전후 잠시 주춤했던 ‘검찰개혁’도 다시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윤호중 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은 지난 3월 23일 비대위 회의에서 새 정부 출범 전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윤 비대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검찰개혁을 후퇴시키지 않도록 검찰개혁 고삐를 단단히 죄겠다”고 했다. 국회 안팎에선 민주당의 ‘검수완박’이 실현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는 않다. 다만 검찰개혁 이슈로 윤 당선인 측과 각을 세워 압박하는 모양새를 만들려는 것 아니겠냐는 시각이 많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용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생 외면하다가는 또 한 번 심판당한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런 정치적 계산을 통해 윤 당선인 측과 사사건건 부딪치는 모양새를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추진하는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게끔 방해해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전략으로 보인다”면서 “정치공학적 판단으로 일관해 온 현 정권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에선 문재인 정권과의 대립이 지방선거 구도에서 오히려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청와대와의 갈등이 선거에서 악재일지 호재일지 섣불리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 사이의 대립 구도는 이미 대선을 통해 결론이 난 것 아닌가. 민주당 입장에선 신구 권력 간의 갈등이 계속 이어지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과반이 넘었던 만큼, ‘문 정권 vs 윤석열’의 구도에서 국민의힘이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월 24일 라디오에 출연해 최근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 갈등 상황에 대해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행보를 저는 아직은 정치적이라고까지 평가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6월 1일 지방선거가 있지 않나. 만약 이런 게 장기화되면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닌지를 저희가 물어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신(新)정부와 일부러 여러 쟁점 사안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 지적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런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 3월 22일 페이스북에 “무조건적 반대가 아니라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 순위에 놓고 윤 당선인의 의제에 관해 논쟁해야 한다”며 “싸우는 야당, 강한 야당이 되겠다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빠루(큰 못을 뽑을 때 쓰는 쇠지렛대)의 길’을 걸어가선 큰일 난다”고 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도 같은 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 신구 권력 간 충돌로 비치는 게 오히려 (민심에는) 감점이 될 수 있다”며 “전략적으로 포석한다면 오히려 민주당에 그렇게 도움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50%에 못 미치는 지지율은 부담
다만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 측 상황이 썩 여의치 않다는 점은 국민의힘에 부담이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의 의뢰로 지난 3월 14〜18일 전국 18세 이상 2521명에게 조사한 결과(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2.0%포인트), 응답자의 49.2%가 윤 당선인이 국정 수행을 ‘잘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 3월 2주 차 조사 당시 52.7%보다 3.5%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지난 조사 결과인 38.1%보다 4.6%포인트 높아진 42.7%였다. 대선 직후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으로 당선인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던 전례와 비교하면 0.73%포인트의 격차가 실감나는 조사 결과다.
윤 당선인의 ‘1호 공약’처럼 비치고 있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해서도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헤럴드 의뢰로 지난 3월 22일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해 찬성한다는 응답은 44.6%로 과반에 못 미쳤다. 반면 53.7%가 반대한다고 답했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윤 당선인으로선 지지율이 50%대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임기를 시작해 지방선거라는 절체절명의 승부를 또 한 번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정진석 의원을 지방선거 공천관리위원장에 임명하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경기도지사 후보로는 유승민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유 전 의원은 아직 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개혁보수 이미지와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유 전 의원이 출마한다면 흥행몰이가 될 전망이다. 이 밖에 심재철·김영환·함진규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출마를 공식 선언한 상태다.
지방선거는 대선·총선에 비해 인물(후보)이나 정책보다 정당을 보고 표를 던지는 ‘묻지마 투표’의 성향이 강하다. 광역·기초의원의 경우 자신이 투표한 시·도지사 후보와 같은 정당에 그대로 표를 주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조사도 있다. 윤 당선인에 대한 지지도가 국민의힘에 오롯이 흡수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지방선거의 승패는 곧 윤 당선인의 행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국민의힘 전직 의원은 “윤 당선인에 대해 여론이 ‘제대로 밀어주자’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면 지방선거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면서도 “현재 지지도만 보면 취임 직후에 치러지는 선거치고 ‘완승’의 스코어는 못 거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든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희망을 거는 대목은 민주당의 서울시장·경기지사 후보군 중 괄목할 만한 상대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민주당에선 경기도지사 후보군으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표를 비롯해 안민석 의원, 염태영 전 수원시장 등이 자천타천 거론된다. 경기도의 경우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5%포인트 차 우위를 점했고, 이재명 후보의 후광을 받을 수 있어 민주당 내부에선 “해볼 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지방선거에서 가장 주목받는 서울시장 후보군에선 인물난을 겪고 있다. 서울의 경우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4%포인트 이상 차이로 패배했다. 현재 거론되는 인사로는 지난해 보궐선거에 출마했던 박영선 전 의원, 박주민 의원뿐이다. 이마저도 출마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오세훈 현 시장에 맞설 만한 중량급 인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민주당 내부에선 송영길·이낙연 전 대표 차출설까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