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온 법제사법위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이 27일 0시 10분쯤 국회 법제사법위에서 ‘검수완박 중재안’ 관련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검찰의 수사 범위를 부패·경제 분야로 대폭 축소해 제한하는 법이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27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입법 독재이자 폭거”라며 “필리버스터 등 국회법이 정한 절차와 수단을 모두 동원해 저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병석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최를 결정할 경우 국회 171석을 가진 민주당의 강행 처리를 막을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26일 오후 7시쯤 법사위 소위에서 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 의결에 나섰다. 이에 반발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퇴장하자, 민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민주당은 소위 의결 직후 오후 9시에 전체회의를 열겠다고 국민의힘에 통보했다. 국민의힘은 전체회의에서 관련 법안에 대해 최장 90일까지 논의 기간이 보장되는 안건조정위 회부를 요청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안건조정위 회부에 대비해 지난 20일 법사위 소속이던 민형배 의원을 ‘위장 탈당’시켰다. 민주당이 계획한 대로 이날 안건조정위는 민주당 의원 3명과 국민의힘 의원 2명, 그리고 탈당한 민 의원으로 구성됐다. 안건조정위는 전체 6명 중 3분의 2인 4명(민주당3+무소속1)이 동의하면 강제 종료된다. 민주당 김진표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안건조정위는 시작한 지 30분여 만인 밤 11시 50분쯤 종료됐고, 법안은 법사위 전체회의에 올라갔다. 민주당 소속 박광온 법사위원장은 안건조정위가 끝난 지 20분 만에 법안 표결을 시도했고, 18명의 법사위원 중 민주당 등 11명의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의원 수십명이 법사위 회의장에 몰려가 ‘권력비리 은폐시도’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헌법 파괴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준석 대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 동의 없이 통과시킨 부동산·공수처·선거법 모두 국민을 고통과 혼란에 빠뜨렸다”며 “힘자랑한다고 나선 이 길이 민심의 파도를 맞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정권을 연장했다면 검찰 수사권을 박탈하자고 했겠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며 “권력자와 힘 있는 자에겐 대박을, 힘없는 사람은 쪽박을 차게 만드는 ‘범죄자 대박 국민 독박법’”이라고 했다.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국민이 무섭지 않으냐” “서민과 약자만 울릴 것”이라는 고함이 계속 터져 나왔다. 회의를 진행하는 박광온 위원장을 향해 “부끄럽지 않으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회의 진행 방해는) 국회선진화법 위반이다.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또다시 고성이 오고 갔다.

민주당이 이날 국회 법사위를 통과시킨 법 개정안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위를 현재의 6개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 등 2개로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국민의힘이 선거 범죄와 공직자 범죄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민주당은 정의당 제안은 받아들여 선거 범죄 수사권은 6·1 지방선거 공소시효(6개월)가 끝나는 연말까지 검찰에 한시적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이 법사위에서 “연말까지만 수사를 허용하면 지방선거 출마자들만 검찰 수사를 받고 국회의원들은 다 빠져나가는데 이런 법을 국민이 납득하겠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선거 범죄가 판을 칠 것”이라고 했지만, 민주당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 사범은 (현재도) 90% 이상이 경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돈 주고 선물 주는 단순한 사건은 몰라도, 치밀하게 계획한 선거 범죄 수사 노하우는 다 검찰에 쌓여있는데 경찰이 당장 이런 수사 역량을 갖출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에서 처리한 법안들을 이번 주 안에 본회의에서 처리해 다음 달 3일로 예정된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공포할 수 있도록 ‘속도전’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민주당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길 바란다”며 27일 본회의 개최를 강하게 요구했다. 박 의장이 직접 중재안을 마련했던 만큼 법안 처리에 협조하라는 것이다.

본회의가 열릴 경우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저지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법안 통과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다. 민주당 171석에 정의당(6석)과 친여 성향 무소속 의원(최대 6~7석)이 합세하면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에 필요한 180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민주당은 지난 2019년 공수처법 등을 강행 처리할 때 활용했던 ‘회기 쪼개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회기가 종료되면 필리버스터도 자동으로 종료되고, 다음 회기 시작과 동시에 법안이 표결에 부쳐지도록 한 국회법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국회 관계자는 “박병석 국회의장이 본회의를 열고, 회기 쪼개기에도 협조하면 국회법 아래서 법안 처리를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