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3일 당무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열고 지방선거 패배 이후 당 수습 방안을 논의했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신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구(舊)주류 세력이었던 친문(親文)계가 나서서 ‘이재명 책임론’을 제기했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이낙연·정세균계는 연석회의에 앞서 ‘계파 해산’ 카드도 꺼내 들며 당권 장악을 노리는 친명계를 압박했다. 신주류인 친명(親明·친이재명)계는 직접 대응을 자제했지만 계파 갈등은 확전되는 분위기다.
친문계는 이날 4시간 동안 진행된 연석회의에서 일제히 나서 이재명 의원을 비판했다. 회의 초반 “특정인을 공격하지 말자”는 말이 나왔지만 사실상 이 의원을 겨냥한 일사불란한 비판이 있었다고 복수의 참석자가 전했다. 설훈 의원은 “이 의원이 이낙연 전 대표를 찾아가서 ‘당을 살리자, 도와달라’고 삼고초려했으면, 선거에서 이기기는 힘들었어도 구청장 자리는 더 건졌을 것”이라며 “판단 착오인지 자만인지 모르겠지만 이 의원은 그렇게 안 했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친문계 의원은 “이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를 인천 계양을과 서울시장에 공천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조사를 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문 김종민 의원은 이재명 의원과 가까운 백혜련 의원을 향해 “의원 단체 채팅방에 올린 ‘친문계 비방글’을 내려달라”고 했다. 양문석 전 경남지사 후보가 친문계를 향해 ‘바퀴벌레’라고 지칭한 글을 백 의원이 공유했는데, 이를 문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백 의원은 “선거에 진 후보의 적절한 글”이라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 의원은 “이낙연계 의원들이 전날 만찬을 했다던데, 거기 참석한 의원들이 그대로 나와 발언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연석회의에는 30명 가까이 발언했는데, 실제로 이낙연계인 설훈·윤영찬·이병훈·홍기원 의원 등이 발언자로 나섰다.
친문계는 연석회의에 앞서선 ‘계파 해산’ 공개 선언까지 했다. 이낙연 전 대표의 측근인 이병훈 의원은 이날 “경선 당시 이 전 대표를 도왔던 의원들은 당시의 인연을 이어가고자 몇 차례 친목을 다졌었지만, 계파로 오해될 수 있는 의원 친목 모임을 해체하기로 했다”며 “모임 해체 결정이 당내 분란의 싹을 도려내고 당이 새로 태어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정세균계도 이날 동시에 계파 해체를 선언했다. 정세균 전 총리와 가까운 의원 모임인 ‘광화문포럼’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해산을 선언했다. 포럼 좌장인 김영주 의원은 이원욱 의원과 기자회견에서 “정세균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경륜과 능력을 실현하고 더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었지만 당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패해 포럼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더는 계속할 이유가 없다”며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식의 훌리건 정치를 벗어나야 당의 재건이 가능하다”고 했다. 친문계의 잇따른 계파 해체 선언은 8월 전당대회로 당 장악을 노리는 친명계의 집단행동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친문계는 이날도 장외에서 이재명 의원을 공개 비판했다. 친문 핵심 홍영표 의원은 라디오에서 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이 의원을 지지했던 1614만명이 뭉쳐서 도와줄 것이라는 위험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종민 의원도 “민주당으로서는 참사였다”며 “이재명, 송영길 두 분이 대선 한 달 만에 출마한 게 결정적이었다”고 했다.
친명계 의원들은 이날 연석회의에서 친문계의 공격에 맞대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일방적인 한쪽의 주장만 있었다”며 “토론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했다. 한 친명계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으로 선거에 패했다고 말한 사람은 단 0.1%도 없었다”며 “친문계가 일방적으로 주구장창 얘기했다”고 했다. 그는 “친명계 의원들은 그들에게 휘말리지 않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고 했다. 한 참석 의원은 “친문계가 원하는 건 이재명 의원의 전대 불출마 선언”이라며 “그걸 대놓고 요구하지 못하니 각자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이재명 의원을 지지하는 강경파 의원과 원외 세력은 ‘이재명 책임론’을 부정하며 이 의원을 엄호했다. 강경파 초선 모임 ‘처럼회’ 소속 이수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여러 동료 의원들께서 이번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을 이재명 의원,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로 지목하는 것을 보고 착잡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며 “이재명을 불러낸 게 누구인가. 당원들이 요청했고 당이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이재명 책임론에 대해 ‘마녀사냥’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손혜원 전 의원은 “민주당의 패배는 이낙연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역공했다. 그러면서 “계속되는 민주당의 오만과 뻘짓 속에서 그나마 경기지사 성공, 인천 계양에 실낱같은 희망의 불씨를 살린 것이 이재명 의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