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조각(組閣)과 대통령실 참모진 인선이 진행 중이던 지난 4월. 현 여권 주류 인사들이 윤 대통령 대선 캠프 좌장 역할을 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인선 정보를 물어보면 “장제원 의원이 나한테도 말하질 않는다”고 했다. 장 의원은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인사를 주도했다. 장 의원은 지인들에게 “당선인이 워낙 보안을 강조해 가족한테도 발설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10일 권성동·장제원 두 사람이 장 의원이 참여하는 당내 의원모임(‘민들레’) 문제로 충돌하자 여권 핵심 인사는 이 일화를 거론했다. 이 인사는 “당시만 해도 지나가는 에피소드로 생각했는데 그때부터 감정에 미묘한 골이 파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인사를 둘러싼 두 사람의 갈등이 ‘정권 2인자’ 자리를 둘러싼 파워 게임의 전조(前兆)일 수 있다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가 10일 공개적으로 ‘민들레’ 반대 발언을 하자, 여권 인사들은 “권 원내대표가 문제 삼은 상대가 장 의원이란 점, 문제 삼는 방식이 공개적이란 점에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겼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장 의원 측에선 “지난 8일 권 원내대표를 만나 ‘사조직’이란 오해를 풀었다”고 했지만, 권 원내대표는 이날 민들레 모임을 막겠다고 했다.
중앙대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캠프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이다. 둘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캠프에서 다시 뭉쳤다. 하지만 대선과 정부 출범 준비 과정에서 두 사람 관계에는 미묘한 부침이 교차했다. 대선 경선 초기만 해도 윤 대통령과 동갑으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권 원내대표가 캠프 좌장 역할을 했다. 장 의원은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했다. 윤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된 이후 장 의원이 아들 문제로 백의종군을 선언한 뒤에는 권 원내대표가 후보 비서실장과 당 사무총장을 맡아 전면에 나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선 직후 장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곁에 뒀고, 장 의원은 정부 인선 실무 작업을 주도했다. 여권 관계자는 “권력의 핵심은 고위 공직 인선”이라며 “권·장 두 사람 모두 정권 실력자지만 장 의원이 인선을 주도하면서 둘 사이에 틈이 생겼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 갈등이 인사 주도권 때문만은 아니란 시각이 많다. 실제 지난 4월 권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경선에 나섰을 때 장 의원이 물밑에서 도왔다. 그런데 4월 말 권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 중재안’을 수용했다가 파동이 벌어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더 생긴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권 원내대표는 지지층 반발에 부닥쳐 여러 차례 사과를 거듭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여권 인사는 “당시 장 의원이 대통령 참모 입장에서 이런저런 정무 판단을 하고 움직였는데 정치적 궁지에 처했던 권 원내대표로선 뭔가 섭섭함을 느낄 만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현안 대응 기조를 두고 두 사람 생각에 일부 차이가 있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이제부터라는 시각도 있다. 여권에선 권 원내대표가 내년 4월 임기를 마치면 차기 당대표에 도전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이준석 현 당대표 임기는 내년 6월까지다. 그런데 의원 30여 명이 가입한 민들레 모임에 장 의원이 참여하자 당내에선 “장 의원이 차기 당대표 경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장 의원이 제3의 인사를 당대표로 지지할 수도 있다고 권 원내대표가 느낀다면 그를 견제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행사할 차기 당권을 두고 두 사람이 경쟁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갈등이 곧 수습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여권 핵심 인사는 “권·장 두 사람의 힘은 궁극적으로 윤 대통령 권력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라며 “윤 대통령이 두 사람의 갈등을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