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발의 예고한 ‘국회법 개정안’은 대통령·총리·장관이 각각 대통령령·총리령·부령(시행령·시행규칙)을 만들거나 수정할 때 사실상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한 게 핵심이다. 국회 170석을 가진 민주당 협조 없이는 법률은 물론이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령도 임의로 만들거나 바꿀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미 국회 법사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주기로 한 작년 합의를 번복했고, 국회의 예산 심사 권한도 대폭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이 국회 장악에 이어 사실상 정부 통제까지 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자 국민의힘은 “국정 발목 잡기를 넘어선 발목 꺾기”라며 반발했다. 여권에선 민주당이 법안을 밀어붙일 경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조 의원은 12일 페이스북을 통해 “행정부가 (대통령령·총리령·부령을 이용해) 법 취지를 왜곡할 경우,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통제할 의무가 있으나 마땅히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자신이 발의할 법안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대통령령 등에는 법률에 다 담지 못하는 구체적 법률 운용 지침이 담긴다.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령 등으로 민주당이 만든 법을 왜곡 시행할 우려가 있으니 대통령령도 통제하겠다는 것이 조 의원 주장이다.
현행법은 국회가 대통령령 등의 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도록 돼 있다. 조 의원 법안은 한발 더 나아가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해당 기관장이 ‘조치 후 보고’하도록 했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보고 의무’를 넣었기 때문에 사실상 강제 조항”이라며 “국회 패싱 방지법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일단 조 의원의 법안에 대해 “당 차원에서 추진하는 법안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조 의원 법안을 비롯해 민주당의 ‘윤석열 정부 통제’ 시도는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원내 지도부 협상에서 후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를 국민의힘에 주기로 했지만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며 번복했다.
민주당은 헌법상 정부의 권한인 ‘예산 편성권’에 대해서도 ‘예산결산특위 상설화’ 등을 통해 권한을 행사할 방침이다.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현재 특위 체제인 예결위를 일반 상임위로 전환하는 방안을 국민의힘에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작년과 올해만 세수(稅收) 추계 오류가 114조원에 달한다”며 “예산을 엉터리로 짜는 기획재정부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국회 안팎에선 “민주당이 야당이 되니까 급작스럽게 모든 걸 바꾸겠다고 행동에 나선다”, “결국 윤 정부가 국정을 주도하는 모습을 그냥 놔두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에서 나온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 지도부는 당 회의에서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법안’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가 다 결정할 것 같으면, 입법·사법·행정부를 뭐 하러 나누느냐”는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12일 페이스북에서 “국회 패싱을 방지하겠다고 하는데, 민주당이야말로 문재인 정부 시절 민망한 기립 표결과 날치기를 반복했다”며 “(국회) 프리패스 당사자가 프리패스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권 원내대표는 “검수완박을 넘어 ‘정부완박’을 시도하는 민주당의 오만”이라고도 했다. 권 원내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대통령령 등이 모법(母法) 취지와 다르거나 범위를 벗어나면 모법을 촘촘히 개정하면 되지, 입법부가 정부에 지시하듯 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압도적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모든 안건을 처리하고 정부에 명령까지 하게 되면 ‘의회 독재’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할 경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이 강행하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은 국회로 돌아가 재의에 부쳐진다. 보통 법안 처리에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지만, ‘재의결’에는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모든 의원이 출석한다고 가정하면 민주당 의석(170석)보다 30석 많은 200석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여야 대치 정국은 더욱 얼어붙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