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이 오는 17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재(再)창당’ 결의안을 확정하기로 했다. ‘비례대표 의원 총사퇴’란 초유의 사태를 피한 정의당이 당명은 물론 당의 정체성과 노선까지 바꾸겠다는 것이다. 36억에 달하는 부채에 당직자 급여도 주지 못 하고, 지방선거에선 원외 정당인 진보당보다도 못 한 성적을 내며 존재감 없는 신세로 전락한 정의당이 전면 쇄신을 통해 바닥 민심을 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의당 이동영 대변인은 10일 추석 메시지에서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를 다시 세우는 재창당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했다. 재창당 추진은 지난 4일 ‘비례대표 의원 5명 총사퇴’ 권고를 묻는 당원 총투표 결과(찬성 40.75%·반대 59.25%)가 나오면서 본격 시작됐다. 권고안이 부결되며 당장의 혼란은 피했지만, 국회의원 탄핵을 위한 당원 투표는 국내 정당 사상 처음인데다, 당원 10명 중 4명 꼴로 찬성을 한 셈이라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비례대표 5명은 합동 기자회견에서 “당을 더 단단하게 통합하고 더 나은 혁신과 재창당으로 나아가는 데에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런 움직임은 정의당이 여러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쪼그라들어 ‘자멸 위기’ 처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단 한 명의 기초단체장을 내지 못 하며 원외 정당인 진보당보다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진보당이 기초단체장 1명·광역의원 3명·기초의원 17명을 배출했지만, 정의당은 광역의원 2명·기초의원 7명 당선에 그쳤다. 이보다 3개월 전 있었던 대선 득표율은 2.37%로, 지난 대선에 비해 반토박이 났다. 여기다 ‘조국 사태’ ‘당내 성추문’ 등 여러 악재를 거치며 당원 수가 급감했다. 당 부채도 36억에 달해 의원 6명이 세비를 쪼개 당직자 월급을 주는 신세가 됐다.
이에 따라 정의당 지도부는 오는 17일 예정된 당 대회에서 ‘재창당 결의안’을 비롯한 당 혁신 안건을 확정하기로 했다. 재창당 결의안에는 △당명 개정 △대안사회 비전과 모델 △당 정체성 확립 △당 노선에 따른 조직운영체계 등 주요 혁신 방향이 포함된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달 19일 선출되는 정의당 새 지도부가 세부적인 재창당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게 된다.
지도부에게 당 혁신 책임이 주어진 만큼, 차기 당 대표 후보들 사이에서도 노선 투쟁이 분출할 조짐이 보인다. 현재로선 이정미 전 의원을 비롯해 조성주 전 정책위 부의장이 출마 의사를 굳힌 상태다. 이외에 이동영 대변인, 정호진 전 수석대변인, 김윤기 전 부대표 등이 출마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선 당 주류인 이정미 전 의원이 유리하다는 전망이 크지만, 이에 맞서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조성주 전 부의장을 지원하고 있다. 조 전 부의장은 민주노총과 최저임금 정책 등 그동안 진보진영이 성역화한 의제에 반대 의사를 내비치며 새로운 노선과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당 일각에선 장혜영·류호정 의원이 대변하는 ‘여성주의’를 몰아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