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1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검찰 수사에 대해 “정권이 바뀌자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언론에 공포된 부처의 판단이 번복됐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부디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정부 기관의 보고를 받고 자신이 최종 결정한 문제이니 문재인 정권 인사들에 대한 압박을 멈추라는 취지로 풀이됐다. 국민의힘은 “국민을 지키지 못한 것에 사과 한마디 없이 월북몰이가 옳았다고 하고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안보 부처들은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획득 가능한 모든 정보와 정황을 분석하여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고, 대통령은 이른바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며 “그런데 판단의 근거가 된 정보와 정황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결론만 정반대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된 다른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처럼 안보 사안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고, 오랜 세월 국가 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으며, 안보 체계를 무력화하는 분별 없는 처사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수사와 관련 공식 입장문을 낸 건 처음이다.
입장문을 대독한 윤건영 의원은 “서욱 전 국방장관은 군복을 입고 32년 동안 국민을 지킨 군인이며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은 대공 분야에서 수십 년간 헌신한 자산”이라며 “그런 분들을 정치 보복에 이용하고 구속 영장을 청구하는 사실에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서훈 전 실장의 구속 여부는 이르면 2일 결정된다. 윤 의원은 문 전 대통령이 ‘자신이 최종 책임자’라는 취지로 얘기한 것이냐는 질문엔 “해석의 영역이라고 본다”고 했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 단장인 하태경 의원은 “우리 국민이 살아있을 때 보고받고도 구조하지 못한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월북몰이가 정당했다는 강변만 늘어놓고 있다”며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했다. ‘안보를 정쟁 대상으로 삼았다’는 문 전 대통령 언급과 관련 국민의힘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기무사 계엄 문건, 사드 논란 등을 일으켜 안보를 정쟁화했던 문 전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며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등 수십 년간 군복을 입고 북한 도발에 맞섰던 군인 등에게 모욕을 줬던 게 문재인 정부”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만 했다.
정치권에서는 “퇴임 후 잊힌 삶을 살겠다”고 했던 문 전 대통령이 사안마다 메시지를 내놓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2주일도 안 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겠다고 하다가 전화 통화를 했고, 북한이 일방적으로 깨트리고 있는 9·19 군사 합의에 대해서도 “정권이 바뀌어도 9·19 군사 합의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지난 10월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서면 조사를 통보하자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했고, 최근엔 김정은이 선물한 풍산개 반환 논란이 일자 이를 해명하는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풍산개 논란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이제 그만들 하자”고도 했다. 야권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이 사안 하나하나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대범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