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변호사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자녀 학교 폭력 문제가 드러난 정순신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발령을 25일 취소했다. 임명 발표 하루만이었다. 그간 윤 대통령 인사 스타일로 보면 이례적으로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정 변호사가 벌인 ‘소송전’에 불쾌감을 드러냈고, 전격적인 임명 취소가 이뤄진 배경이 됐다.

27일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정 변호사가 아들의 학교 폭력 사건과 관련해 지속해서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고를 받은 뒤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 어찌 검사인 공직자가 대법원까지 소송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법적 지식을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했다는 점에 가장 실망감을 드러냈다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했다.

정 변호사의 아들은 2017년 유명 자율형사립고에 다니던 시절 기숙사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동급생에게 8개월 동안 언어폭력을 가해 이듬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재심과 재재심을 거쳐 전학 처분을 받았다. 정 변호사 측은 전학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19년 4월 최종 패소했다. 정 변호사 아들은 전학 처분을 받은 지 1년 만인 2019년 2월에야 전학을 갔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11월 정 변호사 아들의 학폭 사건은 ‘고위직 검사 아들’ 등 익명으로 보도됐다. 당시 정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윤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해당 사건을 이미 알고 있었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근택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27일 CBS 라디오에서 “당시 언론 보도가 났을 때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고위 검사라고 했다”며 “누가 대상인지, 검찰에서는 분명히 알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 변호사가 자신의 치부인 아들의 사건을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을 것 같지는 않다”며 “이번에도 사전 질문서에 제대로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 중 ‘직계존비속이 원‧피고 등으로 관계된 민사, 행정 소송 여부’를 묻는 말에 “아니오”라는 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질문서에는 ‘답변 내용이 다른 것으로 확인될 경우 공직 임용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대통령실은 거짓 답변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임명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사전 질문서에 자녀의 학교폭력 관련 질문을 추가하는 등 일부를 보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27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며 “교육부는 지방교육청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학폭 근절 대책을 조속히 보고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