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북한에서는 ‘자위권’이라고 한다.”

4·5 전주을 재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강성희(51) 의원은 지난달 24일 열린 TV 토론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반도에 전쟁 위협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남과 북이 서로 누가 잘했느냐를 따질 때가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무소속 임정엽 후보는 “미사일 발사가 정당한가 아닌가” 하고 따져 물었는데, 강 의원은 “안타깝다. 남과 북이 싸우지 않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됐나”라고 했다. 강 의원은 한미 동맹이 필요하냐는 질문엔 “지금처럼 미국 입장에서 무조건 따라가는 한미 동맹은 필요하지 않다”며 “자주적이지 않고 굴욕적인 동맹이라면 왜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대놓고 “고맙습니다 민주당” - 진보당 강성희(오른쪽 사진 가운데) 의원이 6일 전북 전주 완산구의 선거사무소에서 국회의원 재선거 당선이 확실시되자 아내(오른쪽)와 윤희숙(왼쪽) 진보당 상임대표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강 의원은 진보당에서 처음으로 원내에 입성한 의원이 됐다. 강 의원은 선거사무소 건물에 ‘고맙습니다 민주당’ 현수막(왼쪽 사진)을 내걸었다. /뉴시스

‘진보당 1호’ 국회의원으로 원내에 입성한 강 의원은 이번 재선거에서 39.07%를 얻어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임정엽 후보(32.11%)를 제쳤다. 2014년 12월 내란 선동으로 해산당한 통합진보당 핵심 인물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진보당은 2017년 10월 민중당을 거쳐 2020년 6월 현재의 진보당이 됐다. 이 계열 정당 간판을 달고 원내 진입에 성공하기는 7년 만이다. 2016년 총선 때 울산에서 당선된 김종훈·윤종오 의원은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민중당 소속이 됐다. 멸족 위기에서 절치부심 끝에 10만 당원, 원내 교두보 마련까지 성공한 것이다. 강 의원은 상임위에 배정될 경우 현재 정원이 부족한 국방위에 배치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년 만에 원내 입성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탈당파 등이 참여해 2011년 말 창당한 통진당은 이듬해 19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대해 13석을 확보했다. 원내 3당으로 올라선 통진당의 전성기였다. 하지만 서울 관악을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 여론 조작 사건,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건을 겪으며 심상정·노회찬·유시민 등이 탈당해 지금의 정의당을 만들었다. 통진당 의석은 6석으로 줄었고,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겪으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위헌 정당 해산 심판 끝에 창당 3년 만에 해산됐다. 경기동부연합 수장인 이 전 의원은 내란 선동 등 혐의로 2015년 1월 징역 9년을 확정받았다.

통진당계 의원들은 원내에서 여러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석기 전 의원은 “애국가는 독재 정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라는 ‘애국가 부정’ 발언으로 논란이 됐고, 김선동 전 의원(민노당)은 2011년 11월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반대하며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던졌다.

◇통진당 해산 뒤 민노총 등 장악

위헌 정당 판결로 사실상 공중분해됐던 통진당은 과거 NL(민족 해방) 계열의 방식대로 바닥 조직부터 재건하기 시작했다. 정치 영역에서는 진보당, 노동계에서는 민노총 등을 주축으로 저인망식 세력 확장을 진행했다. 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통진당의 주축이었던 경기동부연합 출신으로 지난 2021년 선출돼 조직을 장악했다.

진보당 창당 당시 4만5000여 명 수준이었던 당원은 5년여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진보당 관계자는 “당 대표가 노동 현장을 직접 다니면서 당원을 모집하고, ‘가계 부채 119 센터’ 등을 운영하며 현장친화적 활동을 주로 했다”며 “대선·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당원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일부 민노총 조직에선 진보당 가입을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마다 목표치를 세우고 입당 운동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는 김재연 전 통진당 의원이 진보당 후보로 출마했다. 김 전 의원은 의원직을 잃은 뒤 신문 배달, 동네 책방 운영을 했다고 한다.

진보당은 이번 전주을 선거도 ‘인해전술’ ‘물량 공세’에 나섰다. 한 지역 정가 인사는 “1월부터 진보당 당원 1000명이 전주에 상주했다”며 “쓰레기 줍기 같은 봉사 활동을 하며 골목골목을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강성희 의원은 민노총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장 출신으로, 이번 선거에서 민노총과 전농(전국농민회총연맹)이 강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한국외대 글로벌(용인) 캠퍼스 언어인지학과 출신으로 같은 대학 82학번인 이석기 전 의원의 후배다. 학생운동을 했던 임정엽 후보조차 선거 과정에서 강 의원에 대해 “주사파 정당이 전주를 점령했다”고 공격했다. 진보당은 최근 간첩 수사와 관련해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논평을 냈고,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하라'고 했다.

◇불공천으로 길 열어준 민주당

이번 전주을 재선거는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고 국민의힘도 유력 주자가 나서지 않으면서 26.8%라는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통진당 계열 인사의 국회 입성 길을 민주당이 터준 셈이다. 완주군수를 지낸 임정엽 후보는 불공천 결정에 반발해 민주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민주당 소속인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지 선언을 했지만, 그 직후 민주당은 ‘탈당해 출마한 사람은 당선돼도 복당시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전북 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은 “진보당 후보 당선을 예상했다”고 했다.

강 의원은 ‘고맙습니다 민주당’이라고 쓴 현수막을 걸고 선거운동을 벌였고, 진보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 동의안 반대를 공식화하며 민주당 지지층 껴안기에 나섰다. 윤희숙 진보당 대표가 광화문 광장에서 이 대표 체포 동의안 반대 집회를 가진 날 강 의원도 전주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진보당 관계자는 “(정의당과 경쟁에서) 진보 진영의 주도권을 우리가 잡았다”고 말했다. 내년 총선에서 진보 정당의 선명성 경쟁, 주도권 경쟁이 격해질 조짐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