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방송통신위원회의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점수를 낮게 조작한 데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면직안을 30일 재가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위원장 포함 방통위원 5인 중 2명이 공석인 상태로 당분간 운영된다. 후임 방통위원장 후보로는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66) 현 대통령 대외협력특보가 유력 검토된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에 대한 공소장과 (인사혁신처의) 청문 자료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지휘·감독 책임과 의무를 위배하여 (부하 직원 등) 3명이 구속 기소되는 초유의 사태를 발생시켰고, 본인이 직접 중대 범죄를 저질러 형사 소추되는 등 방통위원장으로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러 면직하였다”고 밝혔다. 인사혁신처는 한 위원장이 지난 2일 위계에 의한 공무 집행 방해, 직권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자 그에 대한 면직 징계 절차에 들어갔고 최근 면직안을 대통령에 제청했다.
한 위원장은 2020년 3월 TV조선 반대 활동을 해온 시민 단체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선임하고, 그해 4월 TV조선 평가 점수가 조작된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한 위원장은 TV조선이 재승인 심사에서 기준 점수를 넘었다는 보고를 받자 “미치겠네. 그래서요?”라며 실무진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고 “욕 좀 먹겠네”라고도 했다. 한 위원장은 경기방송 재허가 심사 점수 조작 의혹으로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23일 대리인을 통해 청문에 응한 한 위원장은 기소된 혐의를 부인했고, 면직 처분에 불복해 집행정지 가처분을 내고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인 방통위원장이 종편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상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방통위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한 만큼 면직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의 원래 임기는 7월 말까지다. 한 위원장 임기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윤 대통령이 그를 직권 면직한 것은 국가의 방송 정책을 총괄하는 방통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회복하기 위해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지켜야 할 최고 책임자의 불법 행위를 징계하지 않고 명예 퇴진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방통위설치운영법에 따르면, 방통위원은 위원장 포함 5인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이 위원장 포함 2인을 지명하고 국회가 3인(여당 1명, 야당 2명)을 추천한다. ‘여(與) 3인 대 야(野) 2인’ 구도다. 그러나 한 위원장 면직으로 당분간 방통위원 3인(국민의힘 추천 김효재, 더불어민주당 추천 김현, 윤석열 대통령 지명 이상인) 체제로 운영된다. 민주당이 지난 3월 말 퇴임한 국민의힘 추천 안형환 방통위원 후임이 자기들 몫이라며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 추천안을 국회에서 처리했지만, 윤 대통령은 그가 과거 허위 사실 유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는 등 결격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임명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지난 정부 때 방통위가 정권 뜻에 따라 점수를 조작하고 은폐하는 식으로 방송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후임 방통위원장 후보자 인선은 이동관 특보에 대한 인사 검증 등을 종합해 대통령이 최종 결심할 것으로 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