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당내 선거 제도는 비슷한 듯 다르다. 제도의 차이가 뜻밖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 민주당 ‘돈 봉투’ 사건도 그중 하나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번 사건이 국민의힘엔 없고 자기들에게만 있는 대의원 제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친명(親明·친이재명)계는 이번 기회에 대의원제를 폐지하자고 하는 반면, 비명(非明·비이재명)계는 개인의 일탈을 왜 제도 탓으로 돌리느냐며 유지를 주장한다. 돈 봉투 사건이 당 내분으로 비화한 것이다. 대의원 제도가 뭐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국민의힘은 똑같이 1표, 민주당은 대의원 1표가 권리당원 60표
정당은 정당법에 따라 ‘민주적 내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당원의 총의를 반영할 수 있는 대의기관’을 두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각 당이 대의원을 두지만 실제 운영 방식은 크게 다르다. 민주당은 대의원 권한이 막강하다. 당대표 선출 대회의 공식 명칭 자체가 ‘전국대의원대회’다. 국민의힘은 그냥 ‘전당대회’라고 한다. 민주당 대의원은 당 지도부와 국회의원, 지역위원장,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 당연직 대의원과 각 지역위원회에서 뽑는 선출직 대의원으로 나뉜다. 선출직 대의원은 대개 해당 지역구 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으로 구성한다. 의원에게 돈 봉투를 주면 곧바로 대의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다. 민주당 당대표 선거는 대의원 30%, 월 1000원 이상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 40%, 당비를 안 내는 일반당원 5%, 일반 국민 25%의 비율로 치른다. 현재 대의원은 1만6000명, 권리당원은 120만명가량이다. 대의원 1표의 가치가 권리당원의 60표와 같은 셈이다. 송영길 전 대표 측 돈 봉투 의혹이 나온 2021년 전당대회는 대의원 투표 반영 비율이 45%로 지금보다 더 컸다.
국민의힘도 대의원 규모 및 구성은 민주당과 비슷하지만, 권한은 유명무실하다. 당원들만 투표권을 갖는 당대표 선거에서 대의원과 월 1000원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 일반당원 모두 똑같이 1인 1표다. 다른 특혜가 대의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된 것은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먼저 돈 봉투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다. 2012년 고승덕 의원이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시 박희태 후보 측으로부터 3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검찰 수사와 재판을 거쳐 박희태 전 국회의장 등 관련자가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국민의힘은 대의원 권한을 대폭 줄이고, 전당대회 선거 관리도 중앙선관위에 맡겼다. 반면 민주당은 여전히 대의원제를 유지하고, 선거 관리도 당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 부정이 끼어들 여지가 클 수밖에 없다. 민주당에서 대변인, 관악구청장을 지내고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한 후 지금은 국민의힘 관악갑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종필씨는 “양쪽에서 다 전당대회를 치러보니 대의원제가 돈 봉투의 원인이란 건 어느 정도 맞는 얘기”라며 “대의원제가 없으면 줄 세우기를 할 필요도, 할 수도 없다”고 했다.
관광버스, 체육관 수용 인원에 맞춘 대의원 숫자
전당대회 돈 봉투는 1960년대부터 이어진 악습이다. 공직선거는 선거 비용을 국가가 보전하는 대신 회계 감사를 엄격히 하기 때문에 부정한 돈이 오가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당대표 선거는 정당 내부 일이라는 이유로 외부 감시를 받지 않는다. 돈 선거 유혹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당대표 선거는 여야 공히 30억원을 쓰면 당선, 20억원을 쓰면 낙선한다는 ‘30억 당(當)·20억 낙(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돈 봉투는 전당대회 참석을 위해 상경하는 지방 당원들에게 후보들이 지지를 호소하며 교통비와 숙박비 등을 지원하던 것에서 비롯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전체 대의원 숫자는 체육관 크기에 따라서, 지역구당 대의원 숫자는 버스 크기에 따라서 결정됐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는 “지역구당 대의원이 45명 안팎인데, 45인승 버스 1대에 딱 맞고, 전국 253개 지역구를 합치면 1만명이 조금 넘는데 올림픽 체조경기장(1만5000명), 잠실 실내체육관(1만1000명) 수용 인원과 비슷하다”고 했다. 돈 봉투는 보통 3차례 뿌리는 게 정석이라고 한다. 당대표 후보 등록 때, 선거 중반에, 마지막 선거 3일 전이다.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는 5월 2일 치러졌고, 윤관석·이성만 의원이 돈 봉투를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는 시점은 4월 28~29일이다. 마지막 3일 전에 해당한다.
친명은 “폐지”, 비명은 “유지”
돈 봉투 사건이 터지자 이 대표 강성 지지자인 ‘개딸’들은 조직적으로 대의원제 폐지 운동을 시작했다. 당 청원게시판에 ‘대의원 제도 완전 폐지’를 올리고 5만명이 넘는 동의를 끌어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모든 민주당 의원실을 찾아다니며 동참을 압박했다. 친명계 정청래 최고위원은 “돈 봉투의 통로가 대의원제라 생각한다”며 “당대표도, 당원도, 대의원도 모두 한 표를 가지면 돈 봉투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개딸들은 당내 선거는 물론, 정책에 대한 당론 채택 여부도 전 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비명계는 돈 봉투의 원인을 대의원제에 돌리는 것은 뜬금없다고 한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우리 권리당원들은 수도권·충청·호남에 집중돼 있어, 권리당원만으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게 되면 영남은 완전히 소외된다”며 “이를 보완하는 방안이 대의원제인데, 폐지하자는 것은 민주당의 전국정당화를 포기하자는 얘기”라고 했다. 지난해 기준 수도권(37.3%)과 호남(35.7%)의 권리당원 비중은 영남(7.5%) 권리당원의 10배에 가깝다. 비명계는 친명계가 대의원의 힘을 빼고 권리당원 권한을 강화해 혹시 이 대표에게 ‘유고’ 상태가 생기더라도 당 장악력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라고 의심한다. 친명계는 ‘개딸’로 대표되는 권리당원 지지자가 많지만, 김대중·노무현·문재인 등 과거 정부에서 주류였던 비명계는 상대적으로 ‘간부급’이라고 할 수 있는 대의원 지지층이 두껍다. 친명 지도부는 이미 대의원 1표를 권리당원 20표 정도로 낮추거나 아예 국민의힘처럼 1인 1표로 만드는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 현재로선 민주당 대의원 제도도 곧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총선엔 대의원 영향력 없어… 여야 공천룰 대동소이
책임·권리당원 50%, 지역구민 50%
내년 총선에 나갈 국회의원 후보를 뽑는 방식은 여야가 대동소이하다. 당대표를 뽑을 때와 달리 대의원은 국회의원 후보 선출에는 별 영향력이 없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당내 경선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은 매달 1000원씩 당비를 내는 당원이다. 민주당은 ‘권리당원’, 국민의힘은 ‘책임당원’이라고 부른다. 여야 모두 이들만이 국회의원 후보에 출마할 수 있다. 당내 경선은 권리당원 또는 책임당원 투표 50%와 지역구민 여론조사 50%를 반영한다. 다만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역선택 방지’ 규정을 두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없다.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는 민주당 지지자도 참여할 수 있지만, 민주당 후보 경선에는 국민의힘 지지자가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 룰을 대선 후보 선출에도 적용했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역선택 방지 조항을 두고 한때 갈등을 빚었지만 결국 윤 후보 측이 양보해 이 조항을 두지 않기로 했다.
경선 없이 바로 공천을 줄 수 있는 지역구를 전체의 20% 이내로 제한한다는 점도 양당이 같다. 민주당은 이를 ‘전략공천’이라고 하고, 국민의힘은 ‘우선추천’이라고 부른다. 다만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반복적으로 패배하거나 당세가 약한 지역 또는 현역 의원이 공천에서 배제된 지역 등에 한해서 할 수 있도록 한 반면, 민주당은 ‘선거 전략상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지역’이라고만 규정해 사실상 제한이 없다.
후보자를 부적격 처리하는 기준도 조금씩 다르다. 민주당은 ‘뇌물, 성범죄 등으로 하급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현재 재판을 계속 받는 자’를 부적격 처리하는 규정을 최근 삭제했다. 이 대표를 비롯해 재판을 받고 있는 현역 의원들을 위한 공천 룰 변경이란 지적이 나온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 규정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