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여론조사 회사 34곳의 가입 단체인 한국조사협회는 22일 자체적으로 제정한 ‘정치 선거 전화 여론조사 기준’을 발표했다. 최근 일고 있는 여론조사의 신뢰성 논란과 관련해 조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조사 회사들이 지켜야 할 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가장 주목되는 사항은 응답률 관련 내용이다. 전국 단위 조사에서 통신 3사에서 제공받는 휴대전화 가상 번호를 이용할 경우 최소 10% 이상, 컴퓨터로 번호를 임의로 만드는 RDD(전화번호 임의 걸기) 조사는 최소 7% 이상을 달성하도록 했다. 가상 번호와 달리 조사 대상자의 지역과 연령 등을 미리 알 수 없는 RDD 조사는 난이도를 반영해 기준을 다르게 했다. ‘최소 응답률 7%’는 국회에 발의된 선거법 개정안의 공표 금지 기준보다도 엄격하다. 작년 11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선거 여론조사의 공표 기준을 ‘응답률 5% 이상’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 계류돼 있다.

하지만 당장 응답률이 7% 미만으로 낮은 여론조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응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자동 응답 방식(ARS)으로 조사하는 업체들은 모두 한국조사협회에 가입하지 않아서 조사 기준을 따를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조사협회에는 회장사인 메트릭스와 한국갤럽, 케이스탯, 한국리서치 등 메이저 회사들이 가입돼 있고 리얼미터, 리서치뷰, 조원씨앤아이, 김어준 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꽃 등은 회원사가 아니다.

한국조사협회 회원사들은 사람(조사원)이 진행하는 조사만 하고 ARS는 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기계음을 통한 ARS는 과학적 조사로 보기 어렵다”면서 “선거법 개정을 통해 응답률 기준을 강화하지 않으면 응답률이 지나치게 낮은 ARS 조사의 난립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전체 여론조사 가운데 ARS 비율이 77.7%에 달했다.

한편 한국조사협회는 정치 선거 여론조사를 할 때 부재중이거나 통화 중인 조사 대상자에 대한 재접촉(일명 ‘콜백’)도 최소한 3차례 이상 시도하기로 했다. 재접촉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면 조사 기간을 2일 이상 하도록 했다. 정치 선거 여론조사의 설문 문항 수는 응답자 피로도 등을 고려하여 13문항 이하로 할 것을 권장했다. 또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응답자에게 사례비를 지급하는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한국조사협회 조일상 회장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여론조사 신뢰성 논란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협회의 조사 기준이 여론조사 품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