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의 이른바 ‘페북 사퇴’로 페이스북 정치에 대해 여러 말들이 나온다. 김기현 전 대표는 지난 12월 13일 당대표직을 사퇴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저는 오늘부로 국민의힘 당대표직을 내려놓습니다”로 시작하는 사퇴서를 올렸다.
대개 당대표 사퇴 때는 적어도 국회나 당사에서 정식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 마련. 한데 김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대표 사퇴를 발표했을 뿐, 정식 기자회견을 열지 않았다. 지난 3월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당선된 집권당 대표의 너무나 조용한 퇴장이다.
오히려 김 전 대표가 사퇴 의사를 표명하기 직전 이준석 전 대표와 모처에서 비공개 회동한 것과 관련해 온갖 억측이 난무하자 김 전 대표는 같은날 또다시 페이스북을 통해 “제가 이준석 신당에 참여하는 것 아니냐는 낭설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며 “오히려 오늘 저는 신당 창당을 만류하였다”는 해명 메시지를 내놨다.
심지어 지난 12월 19일에는 김 전 대표 페이스북에 ‘국민의힘 퇴사’라는 글이 올라와 ‘탈당설’이 난무하자, 의원실 측에서 “금일 페북에 표시된 문구는 당대표 사퇴에 따른 이력 수정 과정에서 페이스북 측에 의해 자동으로 게시된 글”이라며 “당적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으니 착오 없으시길 바란다”고 공지를 띄우는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김 전 대표의 이 같은 사퇴 방식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의 불출마 선언과도 판이하다. 친윤(親尹) 핵심 장제원 의원은 김 전 대표 사퇴에 앞선 지난 12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선친 장성만 전 국회부의장의 묘소를 찾은 사진을 공개하며 “이제 잠시 멈추려 한다”는 말로 불출마 의사를 넌지시 표시했다. 그 다음날 국회에서 정식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불출마를 공식화했다. 기자회견 직후에는 기자들을 상대로 “또 다른 얘기를 하면 여러 해석이 나올 수 있어서 백브리핑은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말까지 남겼다. 불과 하루 사이에 이뤄진 집권 여당 유력 의원과 대표의 입장 표명 방식이 판이하게 엇갈린 것이다.
문재인 팔로어 95만명, 압도적 1위
김 전 대표의 이른바 ‘페북 사퇴’는 정치권에서 차지하는 페이스북의 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평가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2030세대에서는 이미 한물간 ‘아재 미디어’로 간주되지만, 여의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레거시 미디어’의 지위를 능가할 정도다. 정치권 인사들 역시 기성 언론을 통해 한 차례 걸러진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페이스북을 통해 날것 그대로의 메시지를 던지고 댓글을 통한 직접적인 반응을 얻길 원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95만여명의 팔로어를 자랑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잊혀진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공언과 달리 페이스북을 통해 현안마다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4월 ‘평산책방’ 운영을 시작한 이후로는 신간 서평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특징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2월 16일에도 문재인 청와대에서 홍보·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낸 최우규 전 비서관이 쓴 ‘대통령의 마음’이란 책을 소개했고, 앞서 지난 12월 9일에는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핵의 변곡점’, 12월 1일에는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쓴 ‘꽃은 무죄다’라는 책을 소개하며 재임 중 정책을 옹호했다.
40만7000여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은 사진이나 특정기사에 메시지를 실어 올리는 전통적 방식은 물론, 장문과 단문의 메시지를 함께 던지는 방식을 병행한다. 단문 메시지는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대표와 경쟁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봉급 월 200만원’과 같은 메시지로 상당히 재미를 봤던 전략이다. 이후 이재명 대표 역시 지난해 6월 지방선거 때 ‘전기, 수도, 공항, 철도 등 민영화 반대’라는 단문 메시지로 주목을 끈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12월 13일에도 “전세피해특별법 개정 선지원후구상제 도입 국가도 일부 책임져야죠?”라는 단문 메시지를 올렸다.
여의도에서 ‘톰과 제리’로 통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 활용을 많이 하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이 전 대표와 안 의원의 페이스북 팔로어 수는 각각 19만3000여명과 14만여명이다. 이 전 대표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10만여명에 달한다. 이 전 대표와 안 의원은 페이스북에 유튜브 영상을 즐겨 올린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 시정은 언제 챙기느냐”는 염려가 나올 정도로, 페이스북을 통해 중앙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을 개진하고 있다. 홍 시장의 페이스북은 12만9000여명이 팔로잉 중인데, 대개 잘 나온 사진을 끼워 메시지를 포장하는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하고 싶은 말만 문자화하는 스타일이다. 아울러 ‘파천황(破天荒)’ ‘흑묘백묘(黑猫白猫)’ ‘면종복배(面從腹背)’ ‘감탄고토(甘呑苦吐)’와 같은 고사성어를 즐겨 써서 주목도를 높이고 있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삼성가노(三姓家奴)’와 같은 고사성어로 메시지 주목도를 높이는 이준석 전 대표와 같은 방식이다. 유승민 전 의원 역시 팔로어 수가 8만8000여명에 달하는데, 주로 방송과 강연일정을 알리는 데 치중하고 있다.
‘페북 사퇴’ 김기현 팔로어 1만6000여명
최근 새해 신당 창당을 공언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예비후보로 총선 출마를 선언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팔로어도 각각 9만7000여명과 4만8000여명에 달한다. 기자 출신으로 단어 선택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는 이낙연 전 대표나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스타일은 본인들의 페이스북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밖에 문재인 정부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리 국무총리를 지내 이낙연 전 대표와 함께 ‘삼총리’ 연대설이 나오는 김부겸 전 총리와 정세균 전 총리도 각각 4만5000여명과 2만8000여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 구속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도 2만8000여명의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페이스북 활용이나 팔로어는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다. 페이스북으로 당대표직 사퇴를 발표했던 김기현 전 대표의 경우 팔로어 수가 1만6000여명에 그친다. 기자회견을 열고 불출마를 선언한 장제원 의원(2만8000여명)보다 적은 수준이다. 김 전 대표 사퇴 후 당대표 권한대행을 맡은 윤재옥 원내대표는 5500여명에 불과하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역시 아직 이렇다 할 페이스북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