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20일 국민의힘 7·23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 전 장관이 가세하면서 국민의힘 당권(黨權) 경쟁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 나경원·윤상현 의원과의 4파전 구도로 짜이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의 빅샷으로 꼽히는 인사들이 속속 깃발을 들면서 26일 시작되는 당대표 경선 레이스는 격전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최근까지 국민의힘에선 한 전 위원장의 독주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경선 판이 커지면서 결선투표가 거론될 정도로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원 전 장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지난 총선 패배 이후 대한민국과 당의 미래에 대해 숙고한 결과 지금은 당과 정부가 한마음 한뜻으로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심을 온전히 받드는 변화와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당대표 경선에 출마하겠다고 했다. 원 전 장관은 지난 4·10 총선 때 인천 계양을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패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대표 도전으로 돌파구를 열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원 전 장관 외에도 24~25일 이틀간 진행되는 후보 등록을 앞두고 한동훈 전 위원장이 23일, 윤상현(5선·인천 동·미추홀을) 의원은 21일 각각 당대표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5선·서울 동작을) 의원도 이날 “정의의 시간, 결정의 때는 차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출마를 검토했던 초선 김재섭 의원은 이날 불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이 4파전으로 치러질 경우 ‘친윤(親尹) 대 비윤(非尹)’ ‘원내(院內) 대 원외(院外)’ 구도가 복잡하게 얽혀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위원장과 원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출신인 반면, 나·윤 의원은 현 정부 초기 비주류 길을 걸었다. 그런데 한 전 위원장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갈등을 겪으며 불편한 관계가 됐다. 반면 나·윤 의원은 이번 총선 때 수도권에서 승리해 5선 고지에 오르면서 여당 내 위상이 이전보다 높아졌다. 원 전 장관은 총선에서 낙선했지만 친윤계에선 나 의원과 더불어 그의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들이 이날 내놓은 메시지에서도 경선 전략 구상의 차이가 엿보였다. 한 전 위원장 측은 이날 언론에 출마 선언 일정을 공지하면서 “이번엔 잘할 수 있다. 잘해서 보수 정권을 재창출하자”는 한 전 위원장 메시지를 전했다. 각종 당대표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서 있는 한 전 위원장이 차기 대선 가능성을 앞세워 ‘총선 패배 책임론’을 돌파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기를 극복하고 이기는 정당을 만들어보겠다”고 했고, 윤 대통령은 격려의 뜻을 전했다고 한 전 위원장 측은 밝혔다. 윤 의원도 “당원들에게 보수 혁명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히는 등 ‘보수 혁신론’을 무기로 경선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두 사람은 ‘건강한 당정 관계’(한동훈) ‘대통령에게 할 말 하는 사람’(윤상현)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지는 등 친윤계와는 거리를 둔 캠페인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원 전 장관은 이날 ‘당과 정부는 한마음 한뜻’을 강조해 친윤 그룹 지지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나 의원은 “(나는) 오직 친(親)국민, 친대한민국일 뿐”이라면서도 “다만 표를 구하는 사람으로선 친윤 표도, 반윤 표도, 비윤 표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현시점에서 여론조사상 한 전 위원장이 다소 우세한 흐름이지만 80%가 반영되는 당심(黨心)의 향배에 따라 결선투표까지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친윤계가 한 전 위원장에게 맞설 대항마로 원 전 장관과 나 의원을 동시 지원해 1차 투표에서 한 전 위원장 과반 득표 저지에 주력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친윤계 인사는 “한 전 위원장의 1차 과반 득표를 저지한 뒤 결선투표에서 ‘한동훈 대 반(反)한동훈’ 일대일 구도를 만들면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