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용산이 흔들리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점을 찍은 상황에서, 그간 거야(巨野)의 공세를 방어하던 여당까지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해서는 차츰 등을 돌리고 있다. 여론이 악화일로를 걸으며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했지만 김 여사가 추석 연휴 전후로 마포대교 방문 등 공개행보를 이어가면서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독대가 불발되면서 윤·한 갈등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고발 사건이 반전 포인트를 맞이하면서 칼자루를 쥔 검찰의 고심도 깊어질 전망이다. 검찰은 거야의 ‘검찰해체’ 공세에 이미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김 여사 방어’ 필리버스터 포기한 국힘
지난 추석 연휴를 전후해 여당의 분위기는 확실히 변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과 함께 동반 하락하면서 그간 김 여사를 철저하게 비호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띈다. 친한(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김 여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당 전반이 김 여사 논란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차츰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추석 연휴 직후인 지난 9월 19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포기한 것은 이런 당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포인트다. 국민의힘은 당일 오후 본회의 개회 직전 의원총회를 열어 필리버스터 대응과 본회의 보이콧 중 보이콧을 선택했다. 그 결과 이날 본회의에서는 쌍특검법(김건희·채상병 특검법)이 야당 단독으로 ‘무혈’ 통과됐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은 데 대해 대외적으로 ‘더 강력한 항의 표시’라고 밝혔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번에 진행된 법안들 상당수는 지난번에 충분히 부당함을 설명했기 때문에 반복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판단이 있었다”며 “의사일정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요구해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강력한 항의 표시로 아예 보이콧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이를 ‘필리버스터 포기’로 해석했다. 거야가 24시간 이후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하고 법안을 처리할 수 있어 당내에서 필리버스터 무용론이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김 여사 이슈는 계속 불거지는데, 언제까지 방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은 것은 최종적으로 추경호 원내대표의 결정이지만 총대 메고 싶은 사람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추 원내대표는 ‘정당성에 예민한 문제가 있어서 필리버스터를 진행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민주당의 주장에 대해 “민주당식으로 해석하고 싶은 사람들의 견해”라고 선을 그었지만, 실제로 당 내부에서 ‘채상병 특검법’ 표결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는 기꺼이 한다 치더라도 김건희 특검법 필리버스터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 간 갈등설이 재점화된 ‘독대 불발’에도 김 여사를 둘러싼 이슈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 대표는 지난 1월 김 여사 이슈를 두고 ‘국민 눈높이’를 언급하며 윤 대통령과 부딪친 바 있다. 한 대표는 지난 9월 24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김 여사 문제도 의제로 보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여러 중요한 사항이 많았는데 그것도 그중 하나”라고 답하며 윤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김 여사 관련 의제를 언급하려 했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김 여사 이슈로 용산과 여당이 완전히 등을 돌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 한 대표가 당내 그립감을 온전히 갖지 못한 데다, 양측이 갈라설 경우 당이 잃을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지금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독대’로 언론플레이를 하며 압박하는 듯했던 한 대표의 태도가 불쾌하고 불편한 것”이라며 “두 사람이 붙으면 당연히 윤 대통령이 이긴다. 윤 대통령이 탈당해버리면 게임은 끝난다. 용산은 이미 고립무원상태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레임덕 상황 속에서 국정 운영을 하면 된다. 그러나 2년 뒤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당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두 사람이 당분간 윈윈(win-win)해야 하기 때문에 맹탕이더라도 조만간 독대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명품백·도이치 변수에 고심 깊어지는 檢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 최종 처분을 앞두고 뜻밖의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결과를 받아든 검찰의 고심도 깊다. 검찰 수심위는 지난 9월 24일 위원 8 대 7의 의견으로 “최재영 목사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야 한다”고 권고했다. 같은 사건으로 지난 9월 6일 김 여사에 대해 모든 혐의 불기소를 권고한 검찰 수심위와는 정반대 결론이 나온 것. 무혐의로 잠정 결론을 내렸던 수사팀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금품을 받은 ‘수수자’는 처벌하지 않고 금품을 제공한 ‘제공자’만 재판에 넘기면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김 여사를 무혐의 불기소 처분으로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을 종결하는 데 법리적 문제는 없을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수심위 결론 역시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은 없다. 다만 문제는 ‘국민감정’이다. 수심위는 전원 민간 위원으로 구성돼 있어 법률가와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수심위가 국민 눈높이를 적극 반영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검찰은 앞서 ‘출장 조사’ ‘총장 패싱’ 논란을 샀던 만큼, 총장이 바뀐 뒤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면 검찰에 대한 불신 여론이 팽배해지고 검찰해체를 주장하는 거야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와 관련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최재영 목사만 기소 결정을 내린) 수심위 결론을 법률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국민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수수자’는 신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김 여사는 불기소가 맞고, ‘제공자’는 누구나 될 수 있어 최 목사는 기소가 가능하다는 게 법률적으로는 가능한 결론”이라며 “그러나 수사팀은 최 목사만 재판에 넘길 경우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할 것까지 고려해 양쪽 모두 죄가 안 된다는 논리를 만들었는데, 수심위 결론이 다르게 났다.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에서 김 여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의심받는 전주(錢主) 손모씨가 유죄를 받은 만큼 김 여사 연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부담도 늘었다. 다만 이 경우도 손씨가 유죄라고 해서 김 여사가 반드시 유죄라는 결론은 나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다. 개별적으로 의사소통이 어떻게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방조 여부를 따질 수 있다는 것.
앞서의 변호사는 “여론을 보면 검찰이 두 사건 모두 김 여사 무죄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도 “도이치모터스 건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 아직 어떻게 결론날지 모르겠지만, 명품백 건은 검찰이 국정감사 이후 연말 안에 무혐의 처분 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