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 추천을 한 달째 미루면서 헌재 파행 운영이 이어지고 있다. 국회가 책임을 방기해 헌재 파행이 장기화한다는 지적이 커지자 국민의힘이 ‘국민의힘이 1명,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하자’는 민주당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헌재 조기 정상화를 위해 민주당 안을 수용하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등에서 민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 협조 없이는 헌법재판관 임명이 어렵다는 현실론도 있다. 만약 민주당 안대로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이 선출되면 총 9인으로 구성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구성은 중도·보수 5인, 진보 4인 체제가 될 전망이다.
헌법재판관은 헌법에 따라 대통령 임명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 국회 선출 3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국회가 선출한 이종석 전 헌재소장, 이영진·김기영 전 재판관이 지난달 17일 퇴임한 후 현재까지 국회가 후임자 3명 선출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 헌재는 재판관 6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양당이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양당이 합의한 인물을 추천하는 게 관례라고 주장하지만, 민주당은 국민의힘보다 의석이 62석이 많은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하고 국민의힘은 나머지 1명만 추천하라고 맞섰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오후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하고 오는 22일까지 국회 몫 헌법재판관 3명 추천을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양당은 재판관 후보 3명을 어떤 비율로 추천할지 막판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양당에선 “아직 어느 당이 재판관 몇 명을 추천할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헌법재판관 공석 사태가 장기화하고 이로 인해 국무위원 등 탄핵소추 심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조만간 결론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현 시점에 당이 민주당안을 받아주겠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헌재 정상화를 위해서 여당이 민주당안을 수용하되 야당도 양보하는 방안은 논의해 볼 수 있다”라고 했다. 다만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의석수로 밀어붙일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2명을 추천하는 방식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국회 몫 헌법재판관 선출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본회의 표결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 몫 헌법재판관을 선출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국민의힘이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 9월 국민의힘이 추천하고 여야가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던 한석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당 주도로 부결된 적이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런 사례가 상호 불신의 골을 만들었기 때문에 양당 원내대표가 22일 만나 최종 합의안을 도출할 때까지 결과를 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국회 몫 2명을 추천하게 될 경우 헌법재판관 구성은 현재 중도·보수 성향 4명(김형두·정정미·정형식·김복형), 진보 성향 2명(문형배·이미선)에서 중도·보수 성향 5명, 진보 성향 4명 구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국회 몫 헌법재판관으로 퇴임한 이종석 전 헌재소장을 다시 선출하는 방안을, 민주당은 정계선 서울서부지법원장과 김성주 광주고법 판사를 선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동의해야 법률 위헌 및 탄핵 등을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국회 관계자는 “내년 4월에는 대통령이 자기 몫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기 때문에 헌재 구성은 또다른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