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용산 한남동의 대통령 관저에서 1시간 30분가량 만났다. 윤 대통령은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정치인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이 지난 10월 21일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면담하는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6일 오후 이뤄진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만남은 서울 용산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대통령실과 한 대표 측은 이날 윤·한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를 언론에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이 주장한 ‘정치인 체포 지시’ 논란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탄핵 반대’ 당론에도 윤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한 대표의 태도 변화가 홍 차장 주장 때문이라고 보고 윤 대통령이 해명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7일 예정된 탄핵안 가결을 막아 달라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만남 직후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윤 대통령으로부터 내 판단(직무 정지)을 뒤집을 만한 말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탄핵 반대 당론을 뒤집진 않았다.

◇ 尹 “홍장원, 없는 사실 만들어 야당과 음모”

여권 고위 관계자는 이날 윤·한 만남과 관련해 “윤 대통령이 홍 차장 주장이 말이 안 된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한 대표에게 설명한 것으로 안다”며 “홍 차장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 야당과 무슨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니냐는 취지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홍 차장에 대해 ‘상부에 엉뚱한 정치적 얘기를 자꾸 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국정원은 국정원법·국정원직원법 등에 따라 국내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그런데 홍 차장이 국정원장에게 ‘이재명 대표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식의 건의를 자주 했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이런 이유로 조태용 국정원장으로부터 홍 차장 교체를 건의받았다”며 “이에 따라 홍 차장 사표를 받아 놓았던 것”이라고 전했다. 조 원장이 홍 차장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경질 건의를 받아 교체를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그런 홍 차장에게 윤 대통령은 정치인 체포를 지시한 일이 없는데 홍 차장이 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홍 차장과 전화 통화를 한 것과 관련해서는 “국정원장이 부재중인 것으로 잘못 알고 차장들 가운데 선임인 1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사와의 협조 사항, 상황 점검 같은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한 대표에게 설명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내가 왜 국정원 1차장에게 정치인 체포·구금을 이야기하겠나, 정말 체포를 지시하려 했다면 다른 곳에 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에 개입할 수 없고, 정치인을 체포할 수사 권한도 없는데 대통령이 그런 지시를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 韓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윤 대통령은 한 대표에게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만남에서 사태 수습 방안으로 임기 단축 개헌 같은 방안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복수의 관계자는 밝혔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지난 3일 비상계엄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국민에게 대통령 입장을 직접 설명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 말은 ‘내가 정리할 시간을 달라’는 정도의 어감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이런 설명을 온전히 수긍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 친한계 의원은 “윤 대통령을 만나고 온 한 대표가 ‘대통령이 전혀 입장 변화가 없었고, 내가 요구한 사안을 수용할 상태가 아니다’라고 전했다”며 “대국민 사과나 탈당 관련 얘기는 일절 없었다고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친한계 의원은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의 설명을 주로 듣기만 했다고 한다”며 “그러다가 중간에 항의조로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셨느냐’ ‘체포조는 지나치지 않았냐’는 등의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다만 이날 면담 후 한 대표가 ‘탄핵 반대’ 당론 변경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한 대표가 윤 대통령 설명 가운데 홍 차장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납득한 것 아니냐는 말이 대통령실 주변에서 나왔다. 홍 차장의 일방적 주장만 들었던 한 대표가 윤 대통령의 해명을 들어 오해를 푼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날 만남은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경호, 尹 만나 임기 단축 개헌 언급

윤 대통령은 앞서 5일 저녁엔 추경호 원내대표와 권영세·권성동 의원을 만나 이번 사태 수습과 관련한 의견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윤 대통령은 담담한 태도로 사태 수습 필요성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대통령이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쇄신책이 있어야 한다는 수준의 시중에 나오는 얘기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이 인사는 “하야와 탄핵은 선택 옵션에 없다는 말씀을 대통령께 드렸고 임기 단축 개헌도 시중의 수습책으로 거론된다는 말도 나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민주당이 감사원장까지 탄핵하며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행동을 하고 있고, 자신은 합헌적 범위 내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민에게 ‘무언가 분명히 잘못되고 있다’는 사인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윤 대통령은 이날 장관급인 진실화해위원장에 박선영 전 의원을 임명했다. 이와 관련, 민주당 김성회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온 국민을 공포와 혼란에 빠뜨리고 헌정 질서를 송두리째 무너뜨려 놓고서는, 혼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히 국정에 손을 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