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彈劾)’은 고위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국회가 소추하여 파면하는 일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헌법에 근거해 제도화됐다. 제헌 헌법 제46조에 대통령과 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이 직무 수행에 관하여 헌법·법률에 위배된 때엔 국회가 탄핵 소추를 결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 조항은 1787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만든 미합중국 헌법을 참고했다고 한다.

탄핵은 탄핵 소추와 탄핵 심판으로 나뉜다. 탄핵 소추권은 국회에 있고 , 탄핵 심판은 1987년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담당한다. 9차례 개헌이 이뤄지는 동안 탄핵 소추 대상은 바뀌었지만 대통령은 대상에서 제외된 적이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회에선 총 49차례 탄핵 소추안이 발의됐다. 이 중 28차례가 윤석열 정부 때 있었다.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건 이번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19번이다. 이 가운데 18번은 보수 정부 각료나 판·검사가 대상이었다. 진보 성향 인사가 탄핵 소추당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그래픽=백형선


대통령이 탄핵 소추되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소추 사유는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 2004년 2월, 17대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노무현 대통령은 언론사 합동 인터뷰에서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정말 말씀드릴 수가 없다”고 발언했고, 이후로도 유사한 발언이 이어지면서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속적으로 위반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나서서 중립 의무 준수를 요청했지만, 노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해 3월 12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주도로 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고, 본회의 표결에서 재적 271명 중 193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탄핵 제도에 의해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 첫 사례로, 고건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노 대통령은 탄핵 소추됐지만, 여론은 이를 주도한 야당에 비우호적이었다. 탄핵 역풍 속에서 치른 4월 15일 총선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과반인 152석을 얻었다. 헌법재판소는 변론 7차례, 평의(評議) 11차례를 거친 뒤 5월 14일 노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기각했다. 노 대통령이 헌법·법률에 위배된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파면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는 취지였다. 국회 탄핵 소추에서 헌재의 기각 결정까지 63일이 걸렸다. 노 대통령은 헌재 결정으로 즉시 직무에 복귀해 2008년 2월까지 임기를 채웠다.

두 번째 대통령 탄핵 소추는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상이었다. 그해 10월 터진 ‘최순실(최서원) 국정 농단 사건’이 발단이 됐다. 박 대통령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최씨가 적법 절차 없이 대통령의 중요 의사 결정과 국정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이었다. 의혹이 확산되자 이른바 ‘촛불 집회’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에서 “하야를 원한다면 탄핵을 해야 할 것”이라며 맞섰다. 결국 민주당, 국민의당 등 당시 야당들은 그해 11월부터 탄핵 소추 준비에 나섰다. 여기에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동조했다.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12월 9일 재적 300명 중 234명 찬성으로 가결됐다. 대통령 직무는 정지됐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았다.

박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 여론은 노 전 대통령 때와 다르게 흘러갔다. 노 전 대통령 때는 탄핵 소추를 주도한 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올랐지만, 박 대통령 탄핵 소추 이후엔 여당(새누리당) 지지율이 반등하지 않았다. 결국 2017년 1월 새누리당의 비박(非朴)계 의원 31명이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하며 분열했다. 새누리당은 그해 2월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헌법재판소는 17차례 변론과 평의 8차례를 거친 뒤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국회 탄핵 소추 이후 91일 만이었다. 박 대통령이 파면되고 두 달 뒤 치른 19대 대선에선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탄핵된 박 전 대통령은 2021년 뇌물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 확정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