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서로 자리를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한 권한대행, 권 원내대표,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뉴시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당한 이후 국민의힘이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의원 단체 텔레그램 대화방 내용은 물론 비공개 의원총회 발언을 녹음한 음성이 외부로 유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통령 탄핵소추 후폭풍에 한동훈 전 대표가 사퇴하는 등 당 지도부가 붕괴했지만, 일주일 가까이 새 비상대책위원장도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사태 수습보단 책임 공방으로 날을 보내고 있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가 서로 책임론을 제기하다가 최근엔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민의힘 의원들의 대화록이 담긴 텔레그램 대화방 내용이 언론에 유출돼 공개됐다. ‘탄핵 찬성’을 주장한 한동훈 전 대표가 계엄 선포 직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 참석을 독려한 상황에서, 의원 일부가 ‘일단 국회 앞 당사로 모이자’고 주장하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당시 ‘국회로 가자’고 제안한 의원 일부가 나중에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으로, 주로 탄핵 반대파 의원들이 ‘당사행(行)’을 주장하거나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자 의원들 사이에서 누가 텔레그램 대화록을 언론에 유출했는지를 두고 공방이 이어졌다.

탄핵 반대파 의원들은 지난 18일 의원총회에서 대화방 유출 경위를 두고 탄핵 찬성파를 성토했다고 한다. ‘탄핵 찬성’ 뜻을 밝혔던 친한계 인사들을 유출자로 의심한 것이다. 그런데 이튿날인 19일 한 종편이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 발언을 녹음한 파일을 입수해 보도하면서 양측 갈등은 폭발 수준으로 치달았다. 녹음에는 한 전 대표를 향해 거세게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한 전 대표가 “비상계엄은 내가 한 게 아니다”라고 하자, 의원들이 고함을 치는 내용도 녹음됐다. 어떤 의원은 들고 있던 물병을 내동댕이쳤다고 한다. 탄핵 반대파에선 이 녹음도 한 전 대표 측 인사가 녹음·유출했을 것으로 보고 공격에 나섰다. 친윤계 이철규 의원은 언론 통화에서 “비공개 의원총회 논의를 녹음해 공개하는 것은 경악할 일”이라며 “특정인을 미화하고 여론을 조작하려는 목적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이 일 이후 국민의힘 일부 의원은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보좌진 협의회도 의총 녹취록 유출에 대한 비판 성명을 내고 “국가적 위기 앞에서 우리의 민낯을 국민에게 공개해 심판받게 하겠다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반면 친한계를 중심으로 한 초재선·소장파 의원들은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을 감행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일부 탄핵 반대파의 행태가 당을 망치고 있다”고 했다.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 입장을 밝히며 1인 시위를 했던 김상욱 의원은 20일 CBS 라디오에서 “요즘 색출이라는 단어가 너무 자주 등장하는데, 반민주적이고 반보수적인 극우적 발상”이라며 “비상계엄처럼 중요한 문제는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이걸 감추려고만 한다”고 했다. 친한계 조경태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계엄을 막은 정치인에게 막말하거나 위협하는 건 적반하장”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때 국민의힘(의원 108명)에선 반대 85표, 찬성 12표, 무효·기권 11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 탄핵 반대파가 다수파인 상황에서 양측의 이런 싸움은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바람에 국민의힘 비대위 구성도 미뤄지고 있다. 친윤계가 중심이 된 탄핵 반대파는 이른바 ‘통합’ 비대위를, 반면 친한계는 윤 대통령과 절연하는 ‘쇄신’ 비대위를 각각 주장하고 있다. 지난 16일과 18일 열린 두 차례 의원총회에서도 가닥이 잡히지 않자, 초·재선과 3선, 4선 이상 의원들이 각각 비대위원장 후보를 추려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내주 초 결정하기로 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민주당이 주도한 감액 예산안 처리로 집권당 지역 예산 프리미엄이 거의 사라진 데다 대통령까지 탄핵소추당해 의정 보고서를 내는 것도 포기한 의원들이 적잖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