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으로 구속되자,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지속돼 온 정치적 혼란이 ‘폭력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1970·80년대생 정치인과 정치 평론가들은 본지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주도한 극단적 대결 정치의 퇴행적, 비극적 결말”이라고 평가하면서 “보수의 과제는 윤 대통령을 딛고 일어서 새로운 정치를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지지 세력이 원한다 해도 공동체와 대한민국을 위해 거부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
작금의 진영 정치는 극단적인 수준을 넘어 심리적 내전 상태로까지 진입했다. 이런 국론 분열을 끝내고 미래로 가려면 허물어지다시피 한 국회의 합의제 관행을 되살려야 한다. 여야가 대화로 협치하는 문화가 무너지다 보니 대통령이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말도 안 되는 시도가 벌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의 지시만 한목소리로 따를 게 아니라,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는 음모론의 싹도 잘라내야 한다. 이른바 ‘부정선거’ 의혹을 보자. 개인적으로는 선관위의 선거 관리에 큰 문제가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선관위를 믿지 못하는 분들이 가진 의구심을 해소해주고 설득할 필요성은 있다. 그래야 국민 통합이 가능해진다. ‘배춧잎 투표용지’나 투표율 조작 같은 의혹이 왜 말이 안 되는지, 조목조목 설명해 주는 노력을 정치권과 선관위가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 이후에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될 수 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정치권이 ‘사법의 정치화’ ‘정치의 사법화’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 번호가 ‘2024헌나8′이다. 지난해 헌재에 접수된 8번째 탄핵 심판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그만큼 민주당은 정부 주요 인사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밀어붙여 정부 기능을 마비시켰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 심판은 몇 달째 지연되는 등 사법부의 행태가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정국이 혼란스러울수록 사법부가 냉철하게 절차적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 죄를 짓고도 “역사의 법정에선 무죄” 운운하며 뻔뻔하게 버티는 정치인들도 사라져야 한다.
한국 민주주의는 권한의 ‘행사’보다 권한의 ‘절제’가 더 중요해졌다. 야권은 192석을 앞세워 국회 의결권을 남용하고, 대통령은 거부권으로 맞서는 극한의 대치가 지금의 비극을 낳았다. 여기에 일부 유튜버 등이 가세해 음모론을 마구 퍼뜨리며 극단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 정치인이 법을 무시하거나 법으로 상식을 깨고, 나아가 음모론자들을 국회로 불러 증언하게 하는 풍토가 오늘의 혼란을 만들었다. 정치인이 먼저 반성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제사회가 급변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성 정치인들은 새로운 흐름이나 어젠다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미 시선이 국내 정치 밖으로 넘어가 있는 젊은 세대가 정치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앞으로 정치권은 보수·진보의 이념적 차이로 사람을 가르는 것이 아닌, 새로운 정책을 두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한다면 지난 대선 때처럼 대장동 비리 의혹과 같은 자극적인 이슈에 매몰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에 들이닥친 경제 위기 같은 중차대한 문제들을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채 지도자를 고르면 지금과 똑같은 상황에 빠질 것이다. 한국 정치가 정책 준비를 충실히 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준비 없이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서 굉장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보수 진영은 폭력과 음모론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화하려는 이들과 단절해야 한다. 이들이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 비생산적인 정치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의 극성 지지자인 개딸을 비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박용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치가 경제·사회·문화적 에너지를 북돋아주기는커녕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목소리 크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이 주목받고 돈벌이하는 시대가 되면서 그걸 지긋지긋해하고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아졌다. 시위대의 법원 난동도 국민에게 충격과 불안감을 줬다. 착한 사람의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지금 정치인에겐 세 가지 용기가 필요하다. 첫째로 절제의 용기다. 대통령은 연이은 거부권 행사에 계엄까지 발동했고, 야당은 야당대로 다 탄핵시켜 버린다고 나섰다. 자기 권한이라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는 악수할 용기다. 아무리 미워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대화하는데, 정치 지도자라면 손 내밀고 대화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셋째는 ‘노’(No) 할 용기다. 지지 세력이 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공동체를 위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안 된다’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런 용기를 보여줬다고 본다. 극단적 진영 논리에 매몰된 정치가 거듭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서 밀려날 것이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안보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틱톡 금지로 대표되는 미·중 갈등, 포 안 쏘는 전쟁이 시작됐다. 1980~1990년대 정치 담론 구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지금의 사태가 역사의 시계를 반대로 돌려버렸다.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 같은 뻔한 구도로 퇴행하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윤 대통령은 사실상 한국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제 보수 진영은 이재명 대표의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70%가 동의하는 최대공약수를 찾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민주공화국에 필요한 담론, 제도를 어떻게 재정립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선관위가 선거를 조작했다’는 건 말이 안 되지만, ‘사전 투표를 이렇게 방만하게 운영해도 되느냐’는 문제 제기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보수는 적법 절차를 강조하는 집단이다. 대통령이 구속된 상황에서,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망가진 상황에서 여론전이 아니라 차분하고 진지한 설명으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풀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