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회복과 성장'을 주제로 제422회 국회(임시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꺼낸 ‘상속세 완화’는 중산층 세 부담, 특히 부동산 상속세 부담 완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 대표는 기업 승계 등에 적용되는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 대해서는 “부자 감세”라고 했을 뿐 진전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세금 부담으로 우리 기업이 해외로 매각되는 현실에 대해서는 이 대표가 눈을 감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최고세율을 인하(50%→40%)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 세법 개정안은 작년 말 본회의에 올라갔으나 야당이 부결시켰다.

그래픽=이철원

◇재계 “상속세 내느니 中에 파는 게 낫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8국 가운데 일본(55%) 다음으로 세율이 높다. 그런데 최대 주주가 상속을 할 때는 ‘할증’이 붙어 상속세율은 최고 60%까지 올라간다. 대기업 최대 주주가 보유한 주식 가치를 일반 주주 주식 평가액보다 20% 가산하는 ‘최대 주주 할증 평가’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제도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적지 않은 중견·중소기업 사업자들은 최고세율 60%의 상속세를 내느니 25%인 양도소득세를 내고 중국 자본에 회사를 파는 게 낫다고 판단할 정도로 상속세에 심한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잘나가는 기업으로 꼽혔던 쓰리세븐, 락앤락, 유니더스 등이 매각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상속세 부담이었다. 최고 60%의 지분이 상속 때마다 세금으로 사라지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최대 주주의 지분율이 100%였다면 한 번 승계하면 40%, 그다음은 40%에서 16%로 떨어질 수 있어 경영권을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량 기업일수록 승계 이후 해외 사모 펀드 등 외부 세력에 의한 경영권 공격 가능성이 커진다. 주가가 오르면 승계 비용이 더 커지기 때문에, 기업이 주가 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주주에게도 불리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높은 상속세율로 당장은 ‘부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한 집안이 일군 기술력과 일자리, 사회적 책임을 주인의식을 갖고 이어받는 오너 경영의 긍정적인 측면도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사업자의 자산 대부분이 공장, 땅, 설비 등이라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사업용 자산을 매각하거나 대출까지 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여야는 남 탓만

이런 문제점 때문에 정부는 작년 국회에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20% 할증을 폐지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야당이 부결시켰다. 정부안에는 최고세율 인하뿐 아니라 현재 1인당 5000만원인 자녀 공제를 5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중산층 겨냥 혜택도 담겼지만 ‘부자 감세’라는 이유로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민주당 안이든, 정부 안이든 지난달 서울 평균 아파트 평균 거래 가격이 11억4924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서울 대부분의 주택은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상속세 관련 세법 개정의 열쇠를 쥔 민주당은 최고세율 인하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임광현 민주당 의원은 16일 입장문을 내고 “윤석열 정부는 시종일관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 폐지 등 초부자 감세에만 매달렸다”며 “중산층을 위한 세법 개정을 준비한 것은 민주당인데, 국민의힘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최고세율 인하 등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중산층 상속세 부담 완화는 이미 합의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2월 10일 민주당이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이 대표는 말로만 기업 경쟁력을 외치며 정작 반기업 반시장 입법에 매진하고 기업을 위한 합리적 세제 개편을 부자 감세라고 비난하며 계층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며 “민생 이야기하면서 국민이 피땀 흘리며 일궈온 재산을 과도하게 징수하는 불합리한 세제를 고수하고 있다”고 했다.

☞상속세 최고세율

한국의 현행 상속세 최고세율은 50%(30억원 초과)다. 그러나 최대 주주가 주식을 상속할 때는 일반 주주의 주식 가치보다 ‘20% 할증’한 세율이 적용돼 최고 60%까지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