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권 핵심 인사들과 전화로 소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이다. 파면이냐 직무 복귀냐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만큼 헌재에서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을 받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구치소에서 석방되면서 지지자들 앞에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걸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과 관련해 법리 대응뿐 아니라 지지층 결집을 통한 정치적 모색에 나설 것 같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8일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후 구치소 앞과 한남동 관저 앞에서 기다리던 지지자들 앞에 나와 감사 인사를 했다. 석방 직후엔 서면으로 국민의힘과 지지자들에게 감사 뜻을 전하는 입장문도 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당분간 절제된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접어든 상황에서 관저를 나와 지지자 등을 만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건 자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헌재의 결정에 악영향을 줄 만한 언행은 조심할 것이란 얘기다. 윤 대통령은 당분간 관저에 머물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관계자, 변호인단 정도만 접촉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윤 대통령 측에선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탄핵심판과 관련해서도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계기가 마련됐다고 보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작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그달 14일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됐다. 윤 대통령은 이어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체포·구속으로 지난 8일 석방될 때까지 52일간 서울구치소에 구금되는 등 수세에 몰렸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기울어진 여론 운동장’에 서 있었는데 이번 구속 취소 결정으로 상당한 동력을 얻은 셈”이라고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전날 구치소를 나서며 지지자들 앞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고 대통령 관저 앞에선 이들과 직접 악수도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선 캠페인 때의 윤 대통령을 보는 것 같더라”며 “직무 정지 상태인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직접 상대한 것 자체가 정치적 메시지”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직전까지 20%대 직무 수행 지지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계엄·탄핵 사태로 수세에 몰렸던 국민의힘 지지도는 올해 들어 상승하기 시작해 일부 여론조사에선 더불어민주당을 역전하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헌재의 탄핵심판은 기본적으로 사법 심판이지만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정치적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다”며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헌재가 증거로 채택한 수사기관 조서의 증거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지지자들이 결집하는 건 대통령 입장에선 상당한 방어 무기”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공수처의 체포 영장 집행 시도 때 이에 반발한 지지자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다. 그런 만큼 윤 대통령이 헌법재판관들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언행은 자제하더라도,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론 조성을 염두에 둔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른바 지지자들의 ‘거리 정치’에 직접 가담하는 일은 없겠지만 거리의 민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자기와 정치적으로 거리를 두는 듯했던 국민의힘 지도부, 의원들의 결집도 유도해 정치적 동력을 키우려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9일 입장문을 내고 “거대 야당의 지휘 아래 공수처, 국수본, 우리법연구회가 야합한 내란 몰이 사기 탄핵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며 “중앙지법의 구속 취소 청구 인용은 헌정 질서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려 한 국헌 문란 세력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였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대통령의 대국민 호소용 비상계엄은 단 6시간 만에 평화롭게 끝났다”며 “비상계엄이 아니라,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조기 대선으로 권력을 찬탈하려는 세력들의 내란 몰이가 우리 사회를 극도의 혼란에 빠트린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