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는 헌재 앞에서 행진 - 국민의힘 기독인회 소속 의원들이 1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탄핵 각하 길’ 걷기 기자회견을 마친 뒤 행진하고 있다. /장련성 기자
野는 광화문으로 행진 - 윤석열 대통령 파면 촉구 국회의원 도보 행진에 참여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이 14일 국회에서 광화문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 공직자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29건 발의해 이 중 13건을 일방 표결 처리했다.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탄핵안 13건 가운데 현재까지 결정이 내려진 8건은 모두 기각됐다. 매번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대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과반 의석(170석)을 확보한 터라 표결을 밀어붙여도 가결을 막지 못했다. 거야(巨野) 민주당의 의석수를 앞세운 입법 독주는 탄핵소추뿐 아니라 법안 처리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토론을 통한 설득과 타협이 생명인 의회 정치가 다수당의 일방 표결 처리로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 국회 국토교통위 전체회의장. 국민의힘에선 간사인 권영진 의원만 홀로 참석해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 11명 명의로 작성한 규탄 성명을 읽고 퇴장했다. 이날 민주당이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광역교통법) 개정안’을 국민의힘 반대에도 일방 처리하는 데 항의한 것이다. 권 의원은 “이 법안은 쟁점 법안도 아닌데 추가 논의를 하자는 요청을 민주당이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이진영

이 개정안은 광역교통법상 대도시권 기준에 ‘인구 50만 이상의 도청 소재지’를 추가해 전북 전주시도 대도시권에 포함시키는 게 골자였다. 전주갑을 지역구로 둔 김윤덕 의원이 발의를 주도했다. 국민의힘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숙의하자고 했다. 진보당 의원도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민주당 소속 소위 위원장과 국토위원장은 단독 표결을 밀어붙였다.

작년 5월 말 22대 국회 출범 이후 18개 상임위에서 안건을 둘러싼 여야 이견이 있는데도 상임위원장이 표결을 밀어붙여 통과시킨 사례는 117건으로 나타났다. 국회사무처가 상임위 회의록 등을 전수 조사해 집계한 결과로, 역대 최다였다. 국회사무처에서 자료를 제출받은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특정 정당의 반대나 이견이 있는 상태에서 상임위나 소위 위원장이 표결 처리를 강행한 사례는 18대 국회 때 44건이었는데 20대 국회에선 7건으로 줄어들었다가 21대 국회 때 64건으로 다시 급증했고, 개원한 지 9개월여밖에 안 된 22대 국회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찍었다.

22대 국회 들어 ‘표결 강행’ 건수가 가장 많은 상임위는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45건)였다. 20·21대 국회 8년간 과방위에서 다수당이 표결을 강행한 건 3건이었는데, 22대 국회 과방위에선 9개월 만에 이보다 15배 많은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이다. 22대 과방위는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과학기술계 지원 논의는 뒷전으로 밀리고, ‘방송 4법’과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을 둘러싼 공방 등 정쟁에 매몰됐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과방위에 이어 역시 민주당에서 위원장을 맡은 법제사법위(40건), 행정안전위(10건) 순으로 표결 강행 사례가 많았다. 21대 국회 때 법사위의 표결 강행은 9건에 그쳤는데 22대 국회 들어선 9개월 만에 4배 이상으로 늘었다. 법사위는 최근에도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한 후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켰다. 행안위도 21대 국회에선 표결 강행이 1건에 그쳤지만, 22대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추진하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을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시키는 등 일방 처리 사례가 늘고 있다.

다수당의 법안 일방 처리는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18대 국회와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21·22대 국회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다. 나 의원은 “의석수 차이가 있더라도 여야 간 토론과 숙의를 통해 방향을 조율하는 것이 의회주의 정신인데 상임위에서 ‘여야 협치’가 실종되고 다수당의 독주가 일상화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