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 26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허위 사실 공표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을 두고 학계와 법조계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고법은 1심이 허위 사실 공표로 인정한 이 대표 발언을 허위 사실이 아닌 ‘인식·의견 표명’으로 봐야 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대표가 고(故) 김문기씨 사망 직후 “김씨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한 발언,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한 “국토교통부 협박으로 용도를 변경했다”는 발언 등에 대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의 이런 판단은 헌법재판소에서 몇 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허위 사실 공표죄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앞으로 선거 무대를 ‘더 정교하고 대담한 거짓말’ 경연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선 “법이 정치인 말의 무게를 망각한 판결”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유력 정치인의 거짓말은 선진국일수록 정치 생명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정치인에게 치명적이다. 과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렸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불법 도청이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거짓말이 문제가 돼 결국 하야했다. 닉슨의 거짓말이 그의 몰락을 낳자 당시 미 언론에선 “닉슨이 닉슨을 잡았다”고 평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성 추문보다 사태 초기 이 사실을 전면 부인한 거짓말이 탄핵소추 사유가 됐다. 2022년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불명예 퇴진한 것도 성 추문 전력이 있는 인사를 보수당 원내부총무로 임명하면서 ‘성추문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추궁에 거짓 해명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런데 이 대표 항소심 판결로 인해 앞으로 한국 선거판은 ‘인식·의견 표명’을 빙자한 허위 사실 공표로 더 혼탁해질 것이라고 정치 전문가들은 우려했다. 김영수 영남대 정치학과 교수는 “사법부가 정치인의 거짓말을 ‘의견 표명’으로 해석한 것은 그 정도 거짓말은 할 수 있다는 일종의 면허증을 내준 셈”이라며 “이번 판결은 진영 양극화가 극심하고 감정·신념에 대한 호소가 사실보다도 중요해지는 ‘탈진실(Post-truth)화’ 흐름을 가속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이 대표 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부는 이 대표의 김문기씨 관련 골프 발언과 백현동 관련 국토부 협박 발언을 허위 사실로 인정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이와 관련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권자는 보통 정치인의 발언을 전체적 맥락을 통해 이해한다”며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특정 발언 부분을 떼어내 인식·의견 표명이거나 과장된 표현이라면서 면죄부를 준 터라 유권자로 하여금 진실과 허위를 구분하려는 판단을 포기하게 하는 셈”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1심 법원은 이 대표의 골프 관련 발언이 대장동 비리 의혹과의 연관성을 끊어내기 위해 관련 사진이 조작됐다고 거짓말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2심은 국민의힘이 10명 단체 사진을 4명으로 확대해 공개한 것을 조작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이 대표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일반 유권자들은 ‘사진이 조작됐다’는 말을 들으면 ‘이 대표가 김씨와 골프 친 적이 없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데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이와 동떨어진 판단”이란 주장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번 판결이 유력 정치인들에게 ‘진영 지지를 바탕으로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고도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거짓말이란 지적이 거짓’이라는 식의 대담한 정쟁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로 권력의 거짓말이 더 대담해질 수 있다”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은 가짜 뉴스의 진원지로 의심받는 피고인에게 관대한 판결이라 ‘당선을 위해 거짓말을 하려면 정교하게 하라’는 메시지를 정치권에 줄 수 있다”고 했다. 김승대 전 헌법재판소 연구부장은 “법원은 정치적 고려보다 사실이 무엇인지를 가리는 게 우선”이라며 “법원이 유력 정치인 말의 무게를 망각한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