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취임 2년 11개월(1060일)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국회의 탄핵 소추 이후 직무 정지된 기간 111일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기(5년)의 절반 정도를 채운 셈이다.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으로 ‘자유’와 ‘공정’을 강조했던 윤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과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과 마찰을 빚었다. 민주당 반대로 주요 정책 시행이 저지되고 민주당이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 일방 처리와 정부 공직자 줄탄핵을 밀어붙이자, 윤 전 대통령은 국정 마비 상황을 타개하겠다며 12·3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정치적 파국을 맞았다.
◇“사람에게 충성 않는다”던 尹, 文 정권 수사로 대통령 당선
윤 전 대통령은 검사를 하던 지난 2013년 10월 21일 있었던 국회의 검찰 국정감사를 계기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검찰의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그는 수사 과정에서 외압을 받았다고 밝혔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한직을 전전하던 윤 전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관련 국정 농단 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으면서 중앙 무대로 복귀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2019년 7월엔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 취임 두 달 만에 법무부 장관에 지명된 조국 전 의원 일가 비리 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정권과 갈등이 이어졌고 2021년 3월 총장직에서 사임했다. 이후 정치적 도전을 모색하던 윤 전 대통령은 2021년 6월 29일 “부패하고 무능한 세력의 집권 연장을 막아야 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한 달 뒤인 7월 30일 국민의힘에 입당해 11월 5일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고, 2022년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선에서 당선됐다. 정치 참여 8개월여 만이었다.
◇‘여소야대’ 국회와 대립
윤 전 대통령은 2022년 5월 10일 취임과 동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서울 용산 옛 국방부 청사로 옮기며 ‘용산 대통령’ 시대를 열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을 폐기하고 자유시장 경제를 경제정책 가치로 삼았다. 하지만 여소야대(與小野大) 21대 국회 의석 구도에서 법안 개정이 필요한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주요 공약은 민주당 반대에 가로막혔다.
거대 야당과 협치보다 대결을 선택한 윤 전 대통령은 작년 4월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의 승리를 도모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171석을 확보하며 108석을 얻은 국민의힘에 압승했다. 총선 과정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호주 대사 임명 강행 등 악재를 자초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거대 야당 우위 구도가 더 심화한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안을 일방 처리하며 윤 전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윤 전 대통령은 법률안 25건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맞섰지만 민주당은 정부 공직자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30건 발의하며 압박을 이어갔다.
◇‘김건희 리스크’, ‘한동훈과 반목’에 위기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도 집요하게 공격했다. 김 여사와 관련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명품 백 수수, 인사 영향력 행사 논란이 불거졌고 민주당은 관련 특검법도 발의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김 여사 이슈를 선제적으로 해소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12·3 비상계엄 직전에도 김 여사 특검법 처리 문제가 정치 쟁점화하는 등 이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게 윤석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됐다”고 했다.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에 대한 윤 전 대통령의 리더십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이 여당 대표를 번번이 교체하며 통치 기반을 위축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검사 시절부터 측근으로 꼽혔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갈등은 윤 전 대통령에게 정치적 치명상이 됐다고 국민의힘 인사들은 말한다. 윤 전 대통령은 22대 총선을 넉 달여 앞둔 2023년 12월 법무부 장관으로 있던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 앉히며 총선 지휘를 맡겼다. 하지만 김 여사 관련 문제로 두 사람은 갈등을 빚었고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로 두 사람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국민의힘의 친한동훈계 의원들이 민주당이 주도한 탄핵 움직임에 가세해 윤 전 대통령은 작년 12월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됐다.
◇한·미·일 협력 강화는 성과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교육·의료 4대 개혁을 추진했지만, 윤 대통령 탄핵으로 결실을 맺지 못했다. 특히 의대 증원 등 의료 개혁도 의정(醫政) 갈등이 심각해지면서 의료 현장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해소하지 못한 채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다만 ‘노조 회계 결산 공시’ 등 노동 개혁을 통해 연간 근로 손실 일수 감소 등을 이끌어내고 원전 생태계를 복원한 것, 방산 수출 확대 등은 윤석열 정부 성과로 꼽힌다. 한미 동맹을 정상화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한 것도 전문가들은 성과로 평가한다. 윤 전 대통령은 미국과 핵 문제를 다루는 양자 협의체인 핵협의그룹(NCG)을 출범시켰고, 일본과는 정상 셔틀 외교를 복원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미국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하고 3국 공조를 강화하는 캠프 데이비드 선언문을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