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법무부와 감사원, 대법원 등 소관기관 6곳의 2025년도 예산안이 통과됐다.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이 손을 들어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조선일보 DB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특수활동비(특활비)·특정업무경비(특경비)가 ‘0원’으로 삭감된 올해 들어 각종 범죄 검거 실적이 대폭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15일 나타났다.

법무부가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도 도주한 ‘자유형(自由刑) 미집행자’ 검거 인원은 217명이었다. 지난해 월평균 검거 실적(301명)과 비교해 30%가량 감소한 수치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자유형 미집행자는 법원에서 징역·금고 등 실형을 선고받고도 거리를 활보하는 범죄자”라면서 “이 가운데 흉악범도 적지 않다”고 했다. 추가 범죄를 막기 위해 검거가 필요하지만 그 실적이 올 들어 둔화된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율도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검찰은 2022년부터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보이스피싱 총책·조직원 등을 검거할 목적으로 전담 수사관을 현지에 파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특활비·특경비가 0원이 되면서 이들에게 수사 경비가 한 푼도 지급되지 않고 있다.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전담 수사관은 지난해까지 보이스피싱범을 월평균 1.25명 검거했지만 올해 들어선 3월까지 검거 실적이 월평균 0.66명으로 줄었다.

◇마약 사범 잡는 위장 거래도 ‘0건’

특경비는 수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지급되는 경비다. 특활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수사·정보 활동에 쓰인다. 범인 검거나 영장 집행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 마약 위장 거래, 불법 도박 사이트 가입비 등 다른 예산 항목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곳에 특활비를 활용한다. 그런데 작년 예산 국회 때 검찰의 특활비·특경비 예산이 0원으로 삭감되면서 검찰의 수사 활동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구자근 의원은 “민주당이 범죄자를 잡아들이는 예산까지 0원으로 만들면서 후유증이 검거 실적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국회가 검찰 특활비·특경비를 전액 삭감하면서 일선 수사 현장에선 무기력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분위기는 수사 관련 지표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예컨대 검찰의 압수 수색 영장 청구 건수는 올해 1월 기준 254건으로 지난해 월평균 424건과 비교해 40% 감소했다. 올해 1~3월 디지털 포렌식 수사관의 현장 지원 건수(407건)와 인력(695명)도 지난해 같은 기간(736건·1100명)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지난 1월 기준 마약 사범을 검거하기 위해 활용하는 위장 거래 시도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위장 거래는 건당 400만원 정도 수사비가 들어간다고 한다. 올해는 특활비 삭감으로 위장 거래에 쓸 수 있는 예산이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작년 검찰의 마약 사범 검거를 위한 위장 거래는 33건(월평균 2.75회)이었다. 한 부장검사는 “수사관들 사이에서 ‘내돈내수(내 돈 내고 내가 수사)가 올해 수사 트렌드’라는 자조도 나온다”고 했다. 올해 1월 검찰은 부산에 있는 김해공항에서 케타민 밀수범 2명을 검거하고 서울·인천·경기 김포 등을 넘나든 공범 2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그런데 수사관들의 식비 등은 담당 검사가 사비로 부담했다고 한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검찰 특활비·특경비로 587억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증빙 서류가 미비하다’ 등의 이유로 전액 삭감해 일방 처리했다. 민주당은 경찰청 예산 심사 과정에서도 정권 퇴진 요구 집회와 관련한 경찰 대응을 문제 삼으며 “경찰청장이 사과하지 않으면 (경찰 예산을) 꼼꼼히 따질 것”이라고 했었다. 결국 올해 예산에서 경찰 특활비도 0원으로 전액 삭감됐다. 반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경우 특활비 1억1100만원, 특경비 4억1800만원이 삭감 없이 정부안대로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