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부개정법률안 재의의 건이 총 투표수 299표 중, 가 190표, 부 105표, 무효 4표로 부결되고 있다. /뉴스1

국회가 지난 17일 대통령(권한대행)이 재의를 요구한 상법 개정안 등 법안 8건을 재표결에 부치면서 윤석열 정부 들어 반복됐던 거야(巨野)의 쟁점 법안 일방 처리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정국이 일단락됐다. 170석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여당의 반대에도 쟁점 법안을 일방 처리했고, 윤석열 정부는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 거부권으로 맞섰다. 윤 정부는 이런 식으로 민주당이 밀어붙인 법안 41건 중 40건의 입법화를 저지했다.

하지만 40여 일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에서 이재명 민주당 경선 후보가 승리할 경우 이 법안 가운데 상당수는 재추진돼 입법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밀어붙였던 경제 관련 쟁점 법안들이 현실화하면 강성 노조와 소액 주주들의 간섭으로 기업의 경영 자유가 축소되고, 무분별한 지출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권한대행 포함)은 민주당이 국회에서 일방 처리한 법안 41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가운데 대통령이 두 차례 이상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나 거부권 행사 후 여당이었던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합의로 통과된 경우, 각종 특검법 등을 제외한 경제 관련 쟁점 법안은 10여 건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 법안은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재계 등에서 우려하고 있다.

그래픽=이철원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불법 파업으로 회사가 피해를 봤을 때 노조원 개개인의 책임을 회사가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는 “사 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법”이라고 한다. 한국경제인협회 관계자는 “노조가 파업하며 회사 기물을 파손해도, 누가 파손했는지를 촬영한 방범 카메라 영상이 없으면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이 입법화하면 하청 근로자가 원청 기업을 상대로 노사 협의를 할 수 있게 해 사 측의 부담을 늘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픽=이철원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신설한 상법 개정안도 현실화할 경우 회사가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기업들은 “장기 전략을 수립하기 어려워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회사가 신사업에 진출하며 연구·개발비와 시설 투자비로 목돈을 쓸 경우, 단기적으로 재무 상황이 악화돼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 경영진이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를 결정했더라도 민주당 상법 개정안이 통과돼 시행되면 주주들은 “회사가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며 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국회가 기업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을 때, 회사가 거부할 수 없게 한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도 기업들은 걱정한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의 22대 총선 공약을 담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25만원씩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행되면 13조원이 투입된다. 내수 진작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소득층에게도 똑같이 25만원을 나눠 주는 정책은 내수 부양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국가 재정 부담만 늘려 미래 세대에게 빚을 물려주는 셈”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은 시장에서 남는 쌀을 국가가 사들이고, 채소 등의 가격 하락으로 발생한 생산자 손해를 국가가 보전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쌀 등의 공급 과잉이 우려되고 재정 부담을 초래한다”며 반대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2년 분석한 결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쌀 의무 매입 비용은 2030년 1조4659억원이 들어간다.

다만 민주당에선 “집권하면 무조건 밀어붙일 문제는 아니다”란 목소리도 나온다. 정책을 집행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집권당이 되면 입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민주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 중에는 독소 조항이 제거되지 않은 법안도 일부 있다”며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 법안을 제외하면 재검토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도 집권 전에 공언한 공약 상당수를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이행하지 못한 적이 있다. 반값 등록금의 경우 1조원 넘는 재정을 추가로 투입해 혜택받는 인원을 크게 늘리겠다고 했지만 집권하고서는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