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한 기법속 전통적 도덕 재창조/가장 푸른눈/슐라/솔로몬의 노래/
소중한 사람/재즈 여성적 감수성 용해 문학은 인간의 탐구이면서 그
인간이 사회적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개인과 사회를 오간다. 미국에서의
흑인문학 역시 리처드 라이트의 항의 문학, 랄프 엘리스의 자기반성적
보편문학, 그리고 제임스 볼드윈의 고통을 승화시키는 문학 등 다양한
갈래가 있다. 그런데 흑인일 뿐 아니라 여성인 경우는 어떤 글을 쓸
수 있는가. 토니 모리슨은 흑인의 자산과 고통스런 과거를 여성이 지
닌 풍요한 감수성으로 용해시켜 소외의 두겹 그물을 뛰어넘는다. 최초
의 성공작인 가장 푸른 눈 에서 못생긴 소녀 피콜라는 파란 눈을 가
지면 미인이 되고 사랑을 받으리라는 헛된 믿음을 갖는다. 어른들에 의
해 잘못 심어진 그녀의 왜곡된 꿈은 아버지의 아기를 사산하고 정신이상
이 되는 파국을 부른다. 모리슨은 이런 비극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그녀의 가족과 대비
되는 흑인가족을 제시하여 한 소녀의 아픔이 이웃에게 성숙을 위한 거름
이 되게 한다. 슐라 에서는 백인들의 이익을 위해 그때 그때 기준
이 바뀌는 흑인지역과 그런 기준의 혼란이 그곳에 사는 주민에게 미친
영향을 분열된 삶을 통해 그린다. 세련되고 빈틈없으나 메마르고 고독한
삶을 사는 넬과 자유분방하지만 무감동하리만치 잔인한 슐라. 어느 한
쪽도 완벽하지 못한 두 여인의 삶은 한 인간의 분열된 모습이기도 하다
. 전통적 주제-새형식 솔로몬의 노래 에서 어머니는 아들이 네살
이 되도록 젖을 먹인다. 그래서 그애의 별명은 밀크맨이다. 얼마나 공
허한 삶이었기에 그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나. 그리고 그녀의 공허는 어디
에서 오는가. 돈은 많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지배하기 위한
것으로 믿는 남편. 그리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편협하고 이기적으로
자란 주인공. 그는 어느날 가난하지만 독립적이고 삶을 깊이있게 보는
고모의 오두막에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한다. 솔로몬의 노래 에서 흑인
의 과거는 현재의 충만한 삶을 위해 재창조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후
예로서 금을 찾으러 남부로 떠나지만 온갖 시련을 겪은 후 고모의 후예
가 되어 돌아온다. 그는 조상의 풍요한 삶과 고통으로 점철된 과거의
자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얻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상상
력을 배우게 된 것이다. 환상과 사실이 결합된 문체로 백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근원을 찾고 자아포기를 통해 자기구원에 이른 존재의 긍정
은 퓰리처상을 받은 가장 뛰어난작품 소중한사람 (belo-ved)에서
도 반복된다. 노예였던 어머니가 자신이 겪은 참혹한 삶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자식을 죽인다. 이 충격적인 소재를 끌어들여 모리슨은 왜 그
토록 소중한 아이를 죽일 수 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어서
그런 기억이 그 이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그린다. 작가는 잘못된
노예제도를 고발하고 그런 과거의 기억과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재
의 삶을 희생시키는 주인공을 향해 말한다. 진정한 사랑은 집착이 아니
고 후회도 아니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재즈 에서 모리슨은 다시 한번 대담한 사건을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소개한다. 오십세된 남편은 딸같은 연인을 죽일 정도로 사랑
하고 아내는 죽은 얼굴에 또한번 칼을 댈 정도로 그애를 증오한다. 그
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조금씩
드러낸다. 갖가지 노동 끝에 겨우 살만해지자 여주인공은 자식을 원하고
남편은 딸같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삶을 지배한 금발의 환
상때문에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했고 사랑받지 못했던 어릴 적 삶
이 자식낳기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도 남편도 어린 연인도 모
두 백인과 흑인으로부터 받은 과거의 상처때문에 없는 것, 자신이 아닌
것에 매달려 삶의 순간 순간을 희생시켜온 것이다. 모리슨은 이처럼
작품마다 항의와 반성과 고통의 승화라는삼중구조속에서흑인의 주체성,
아니 억압받아온 한 인간의 주체성을 밝힌다. 그리고 사랑의 의미와 역
사의 의미, 자아의 발견, 가족과 이웃의 중요성등 지극히 전통적인 주
제를 새로운 형식에 담아낸다. 시적 내면묘사 탁월 권위있는 저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스스로 작중인물의 하나가 되어 함께 알아보자는 이웃
의식, 저자의 매끄러운 설명대신 충격적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제시하
고 그 주위를 맴도는 인물들의 나선형식 반복서술, 시적이리만치 치밀하
고 압축된 내면 묘사, 환상과 사실의 자연스런 결합, 여기저기 숨겨놓
은 실마리 등 그녀는 현대소설가로서 새로운 전략에 인색하지 않다. 난
해한 기법의 대중화랄까. 그러면서도 그 속에는 전통적인 도덕이 용해되
어 있어 현재를 위한 과거의 재창조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독자층 인종 초월 미문학 대가/최신작 재
즈 베스트셀러 노벨문학상 영예까지 "내가 가진 것이라곤 상상력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와 고독의 느낌, 그리고 언어에 대한 끔찍한 집
착 뿐이었다.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
정된 토니 모리슨은 현재 미국에서 문학성을 높이 평가받으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거머쥔 작가중의 하나다. 퓰리처상 수상작 소중한 사람 외에
그녀의 소설들은 도서관협회상, 뉴욕비평가상등을 두루 받았고, 최신작
재즈 는 92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모리슨의 소설들은 물론
미국의 역사에서 흑인들이 겪어야 하는 물질적, 정신적 고통을 여성의
시선에서 그렸지만, 그 독자층이 흑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언론이
그녀를 가리켜 범국민적 작가라고 지칭할 정도로 그녀의 소설은 백인들
에게도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심지어 저명한 비평가 피들러는 "모리슨
의 소설은 주로 백인 중산층을 겨냥하는 것 같다"면서 "그녀의 소설은
흑인문학보다는 윌리엄 포크너 같은 백인 작가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고 지적하기도 한다. 모리슨은 지난해 재즈 를 발표하면서 동시에
문학평론을 담은 산문집 어둠 속에의 유희 를 나란히 펴냈는데, 이례
적으로 소설과 비소설부문에서 모두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최근들어 그
리 역사가 길지 않은 미국의 문학사에서 흑인공동체의 문화와 민속, 그
리고 흑인 특유의 영어 표현들에서 바로 미국 문학의 특성을 찾아야 한
다는 시각이 문학연구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모리슨의 작가적 위
상은 그같은 흑인문학 존중의 분위기 속에서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스
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까지 안겨주었으니 모리슨은 흑인여성 이라는
조건을 넘어서 당당하게 미국문학의 대가 가 됐다. 국내에서 모리슨
은 노벨문학상 수상이전부터 활발하게 소개됐다. 가장 푸른 눈 소
중한 사람 슐라 솔로몬의 노래 재즈 등이 이미 번역되었고,
일부는 품절됐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개정판이 나올 것으로 보
인다. 박해현기자
입력 199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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