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은 반식량 이라는 속담이 있다.아무리 호화스런 잔치음식이 있어
도 김치없는 음식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방아다리(
지금의 서울 연지동)배추밭엔 국가용 밭이니 민가에선 쓰지못한다는 푯말
을 꽂았다. 원래 배추가 잘되는 곳은 개성인데 서울의 방아다리 배추를
따르지못했다고 한다. 방아다리 배추는 다른 배추보다 속이 알차고 색
깔이 희며 힘줄이 적어 감칠맛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기르는 방식도 유
달라, 떡잎부터 남길것을 정해 두고 주변의 것을 솎아서 성글게 키웠다
고 한다. 한말 궁중에선 김장을 1천통씩 했는데 종류는 석박지, 동
치미, 송송이(깍두기), 보김치, 젓국지등이었다. 수라상에는 깨끗한
속대만으로 만든 석박지나 보김치를 올렸는데 이파리가 노랗고 무가 반듯
하게 썰어진 것을 골라서 상을 차렸다. 배추나 무는 마장동, 왕십리,
연건동에 궁중용 채마전을 지정해놓고 좋은 것만 골라 진상토록 했다.
궁중의 김장김치는 워낙 양이 많아, 김장을 하는데 열흘이나 걸렸다.
이때는 주방상궁들만으론 할 수가 없어서 침방상궁이나 수방상궁들까지
동원돼야했다. 민가의 배추통김치를 궁중에선 젓국지라고 했다. 굴,
낙지, 조기등의 어물을 넉넉히 넣고 양지머리를 삶은 육수에 젓국으로
간을 해서 부어 익혔다. 동치미는 찰고 모양이 예쁜 것을 깨끗이 씻어
서 소금에 굴려서 독에 차곡차곡 담아 하룻밤을 절였다. 다음날, 배는
통째로 껍질을 벗기고 흰파는 크게 토막내고 생강과 마늘은 납짝하게
저며서 함께 무명주머니에 넣어 독에 담았다. 삭힌 고추와 유자는 통째
로 넣고 소금물을 부어서 익혔다. 배와 유자는 독에서 꺼내어 썰어먹었
는데 동치미 국물에 꿀을 조금 타면 그 맛이 매우 훌륭했다고 한다.
깍두기는 무를 송송하게 썰었다하여 송송이 라 불렀다.배추줄거리도 따
로 절여서 양념을 버무렸는데 굴과 갓을 넉넉히 넣고 젓국을부어 간을
맞췄다. 한복진.춘천전문대교수
입력 1993.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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