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역사는 한묶음" 새 시각/ 지적무대 단일화 창출 주장/계몽
주의 교조 비판 대학의 개혁 관심 사회주의의 붕괴, 지역적 분쟁의
격화 등 급변하는 세계정세속에서 인류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
한 의문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사회학자 I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은
현대 사회과학의 양대 흐름인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서 세계
사를 바라보는 새 시각을 제시하려는 시도로 널리 주목받고 있다. 국내
에서도 월러스틴의 저서들이 계속 번역되며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덕성
여대 김경일교수의 글을 통해 그의 이론이 지니는 의미를 분석해본다.
편집자주 발전-근대화론의 대안 이매뉴엘 월러스틴의 세계체제(Wo
rld system) 분석은 1960년대 전세계적으로 사회과학을 지배
했던 발전론및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으로서 1970년에 등장한 이론이다
.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했던 종속이론가들의 대
부분이, 예컨대 프랑크(A.G.Frank)의 경우처럼 이론적 모순을
드러내거나 혹은 카르도소(F.H.Cardoso)와 같이 기존체제로
전향 함으로써 스스로의 조락을 재촉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의 이론은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더욱더 이론적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체제론자로서 월러스틴의 이론이 가지는 참신성은 먼저 국
가나 시장, 혹은 사회를 주요한 연구대상으로 여겨왔던 동료 사회과학자
들에게 이른바 역사적 체제 를 분석의 단위로 삼자고 권고한데 있었다
. 모든 인간의 활동을 포괄하는 이 역사적 체제는 지속적인 구조를 가
진다는 점에서 체계적이며 자연적 수명 즉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역사를 강조하는 경우 체제적인 것이 경시되고 체제를 강조
하는 경우 역사적인 것이 무시되어 왔던 주류 사회과학의 흐름에서 그는
역사적인 모든 것은 체제적이요 체제적인 모든 것은 역사적이라고 주장
한다. 구체적으로 월러스틴은 역사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가 어떠한 것
이었으며 하나의 체제로서 그것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를 해명하려고 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15
세기 말엽 유럽에서 탄생한 이 역사적 체제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지리적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 왔다. 이처럼 자본주의 체
제는 4백년 내지 5백년 동안의 번영을 누린 뒤에 20세기초에 구조적
위기를 맞기 시작하였는데 아마도 다음 세기에 역사적 체제로서 사멸할
것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사회과학 새장 열어 궁극적으로 역사적
사회과학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월러스틴의 지적관심의 궤적은 정치와 경
제에 관한 분석에서 문화적 측면으로 점차 강조점을 옮겨 왔다. 197
4년에 간행된 근대세계체제(The Modern World syste
m) 제1권의 서문에서 밝힌 바 있듯이 이 야심작 역시 통일과학
(Unidisciplinarity)을 위한 전범을 제공한다는 동기에서
시작한 것이며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는 이
를 대표하는 저서이다. 이들 책에서 월러스틴은 근대의 과학과 지식체계
및 대학에 대한 독창적이고 근본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는 19세기
사회과학을 이른바 근대성의 제도적인 토대로서 상정하고 그것을 거부한다
.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의 근저에 있는 지배적인 신
념들, 예컨대 진보의 불가피성에 대한 계몽주의적 교조에 대하여 근본적
인 회의를 제기한다. 19세기 사회과학에 대한 그의 논의는 14세기
부터 나타나기 시작해서 17세기에 이르러 뉴턴, 로크, 그리고 데카르
트의 지적 승리와 더불어 체계화된 지적 장치에 대한 의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분화의 최종형태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승리를 다분히
반영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과정의 핵심
이 세가지 활동영역 즉 국가와 관련된 권력행사의 공적 분야, 가공의
시장에 관련된 생산의 반공적 분야, 사회문화적 현상이 주가 되는 일상
생활의 사적 분야 등으로 구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 혼
란앞에서 그가 처방으로 제시하는 것은 세계의 대학체제를 시급하게 개조
해야 할 필요이며 총체적 연구를 지향하는 단일한 지적무대의 창출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사회과학들이 성립한 1백50년전의 원점으로 되돌
아가서 전세계적 규모로 전개되는 역사적 사회과학들의 지식활동을 근본적
으로 재편성할 것을 주장한다. 진정한 진보 에 신념 보편적 사회
과학에 대한 야망은 19세기 사회과학이 성립된 이래 오랫동안 달성하고
자 한 꿈이었다. 월러스틴이 주장하는 역사적 사회과학 이 과연 서구
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인종차별주의나 성차별주의의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
운 새로운 지적 개념과 지식 구조의 형태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아직 불확실하다. 또한 특정 분과내의 개념틀과 논리들에
익숙해 온 우리에게 그의 이론은 때때로 터무니 없는 망상으로 보이기도
하고, 실효성없는 공허한 처방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우리가 월러스틴의 책들을 통해서 배울수 있는 것은 전체성에 대한
지향과 사물의 근저에 닿은 문제제기, 진정한 진보와 진리추구에 대한
신념 및 집단적 성찰을 위한 끊임 없는 열정일 것이다. 김경일 덕성여
대 교수.사회학 *월러스틴 누구인가/정열적 저술활동 차기 세계사회
학회장 이매뉴엘 월러스틴(1930~)은 지난 7월말 독일 빌레펠트에
서 열린 세계사회학대회에서 차기 세계사회학회장으로 선출될 정도로 국제
적인 지명도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사회학자이다. 뉴욕태생의 월
러스틴은 콜럼비아대학에서 학사-석사를 거쳐 1959년 박사학위를 받았
고 이후 10여년간 모교 교수로 재직했다. 1976년 뉴욕주립대학으로
옮겨 현재까지 사회학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이 대학의 페르낭 브로델
센터 소장직도 맡고 있다. 사회학자로서 월러스틴의 초기 관심은 아
프리카 연구였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독립의 길 가나와 아이보리코
스트 였으며 이후 아프리카 독립의 정치학 (1961), 아프리카
통합의 정치학 (1967) 등을 잇달아 발표해 아프리카 전문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월러스틴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
은 그가 1974년에 제1권을 내놓은 근대세계체제 연작이다. 19
80년과 1988년 제2권과 제3권을 각각 내놓은 근대세계체제 는
15세기말 이후의 세계역사를 지배해온 자본주의 체제의 발생과 발전,
변화과정을 방대하고도 치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전세계의 사회과학계에
세계체제론 이란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전5권으로 완간될 예정인
근대세계체제 는 20세기 사회학계, 나아가 사회과학계가 거둔 가장 충
실한 학문적 업적의 하나로 평가된다. 그의 저서중 세계체제론을 압축
적으로 설명한 역사적 자본주의 와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다룬 사회과
학으로부터의 탈피 (이상 창작과 비평사)가 번역됐고, 그의 논문을 묶
은 세계체계론 (나남)도 나왔다. 또 월러스틴 자신이 한국을 두차례
방문해 우리나라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편이다. 이선민기자
입력 1994.09.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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