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데이턴 협정의 당사자인 대통령 3명은 모두 「골수 민족주의자」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슬로보단 밀로세비치(54) 세르비아 대통령은 그중에서도 대세르비아주
의를 표방한 극우 민족주의로 내 세르비아계를 지원, 「인종청소」
의 배후세력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59년 공산당에 입당후 87년 공산당 제1서기장을 역임하기까지 핵심 공
산당원으로 활동해온 그는 공산주의의 몰락후 민족주의자로 변신했다. 그
는 90년 세르비아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92년 재선됐다.

「발칸의 맹주」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르비아 세력을 규합한 그는 그동안
세르비아계에 군수물자를 지원해왔다. 그러나 내전이 계속되면서 의
경제제재로 파탄에 처한 경제상태와 라도반 카라지치 세르비아계 지도자와
의 의견마찰은 그를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만들었다.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70) 대통령은 구유고 연방의 6개 공화
국수장중 유일한 반공주의자로 내란의 최대 피해자인 회교도 지
도자다. 공화국 출범당시 43를 차지하는 회교도의 압도적인 지
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내전발발 이후 그의 지지도는 바닥을 향해
치달았었다.

독실한 회교신자인 그는 유고공화국 당시 「요시찰인물」로 분류되며 감
시를 받았지만 회교도들로부터는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유고공화국
붕괴후 그는 고지식하게도 회교도,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가 한 나라안
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힘이 없는 그의 원칙
주의는 결국 10만여명 이상의 동족이 학살되고 영토의 70를 세
르비아계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는 비극으로 끝나야만 했다.

프란요 투즈만(73) 크로아티아 공화국 대통령은 이번 협상의 최대의 수
혜자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와 세르비아계가 오랜 내전
으로 지쳐 있을때 91년 세르비아계에 빼앗겼던 크라이나지역의 영토를 되
찾기위해 기습작전을 감행, 3일만에 대부분을 탈환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
다.

그는 19세때 티토의 게릴라부대에 들어가 공산주의 전사로 성장했다.
60년 최연소로 장성이 되기까지 막시스트로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유고슬라
비아 전사를 연구하면서 민족주의에 눈을 떴다. 이후 67년 민족주의적 성
향을 띤다는 이유로 당원자격박탈후 해임당한 사건은 그를 민족주의자로
인생을 다시 출발하게 만들었다. 90년 유고연방 붕괴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강력한 독재정치를 펼치면서도 군사력보강에 역점을 둬 의 무기
금수후에도 군병력 증강과 훈련을 강화, 앞날에 대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