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수부대 질책하자 만류서한 보내 ***
*** "전씨 당시 광주방문은 없었다" ***.

5·18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 사령관으로 전남도청진압작
전 등을 주도했던 소준렬씨(64)는 9일 『80년 당시 공수부대의 과잉진
압을 질책하자 당시 보안사령관이 「공수부대의 사기를 떨어뜨
리지말라」는 내용의 친필서한을 보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80년 광
주민주화운동 진압작전 지휘에 전씨가 개입했었다는 주장은 여러차례
제기됐으나 당시 진압군측에 서 있었던 군 고위 관계자가 전씨의 직접
개입을 추정케하는 증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소씨는 이날자 「전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교사사령관으로 부임
한 직후인 80년 5월23일 공수부대의 과잉진압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으
로 판단, 공수부대원들을 광주비행장으로 모두 철수시켰다』며 『이어
공수여단장인 최웅-최세창준장 등에게 「너희들 때문에 시민들 눈이 뒤
집혔다」고 심하게 질책하자 이튿날인 24일 당시 특전사령관이
전교사사령관실로 전씨의 친필서한을 가져왔다』고 증언했다. 소씨는
『16절지 크기의 이 서한에는 「심한 질책은 곤란하다, 공수부대의 사기
를 떨어뜨리지 말라」는 내용과 전씨의 서명이 있었다』고 밝혔다. 소씨
는 그러나 문제의 친서를 현재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소씨는 또 『5월25일 광주를 방문한 당시 대통령은 군이 (진
압)작전을 하지 말것을 종용하고, 「희생자가 많을 경우 국제적으로 문
제가된다」며 강경진압을 말렸다』고 밝혔다. 소씨는 그러나 『전씨는 당
시 광주에 온 사실이 없으며 씨는 80년 6월에 통상적인 부대방
문차 내려 왔었다』고 전씨의 당시 광주방문설을 부인했다.

소씨는 이어 『5월27일 도청진압작전(충정작전)은 전적으로 내가 지
휘하고 이것이 사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책임을 지겠다』며 『단지 특
공조를 11공수여단에서 3공수여단으로 바꾸고 계엄군용 민간인 복장과
가발을 서울에서 공수해오는 등의 일은 사령관의 건의에 따랐
다』고 말했다. 소씨는 또 『초기 과잉진압에는 정웅 당시 31사단장이
책임질 부분이 많다』고 주장했다.

소씨는 80년 5월21일 경질된 윤흥정중장의 후임으로 전교사사령관
에 임명돼 5월22일 부임, 도청진압작전 등을 수행한 뒤 83년 12월 예
편해 5-6공 당시 토지개발공사 이사장-재향군인회 회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