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벅 여사가 한국을 배경으로 쓴 장편소설 「살아있는 갈대」(전2권·
동문사간)가 부녀사이인 고 장왕록교수(장왕록)와 장영희서강대교수(44·
영문학) 공동번역으로 새로 나왔다. 63년 이 소설을 번역-출간한 뒤 개
역작업을 하던 장왕록교수가 94년 사고로 타계하자 장영희교수가 아버
지 작업을 이어받아 완성해내 문단에 훈훈한 화제를 던지고 있다.

「대지」를 비롯한 펄벅여사 작품 20여편을 도맡아 번역한 고 장교수
는 이미 딸과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속편 「스칼렛」을 공동 번
역한 바 있다. 장영희교수는 『책이 나오자 마자 아버지 묘소에 들고가
인사드렸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어버지는 제가 삶을 의지했던 이이자 공부 방향을 지도해준 「학문
적 선배」였습니다. 이 소설은 당신이 특히 아끼시던 작품이라 그분이
안계신 공백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장영희교수는 『소설에 등장하는 옛 풍속이나 지명들은 한학을 공부
하신 아버지 초역이 없었다면 펄벅여사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갈수록 소흘히 하는 전통문화와 역사를 외국인이 오히려 이
렇게 자세히 복원해놓았다는 데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갈대」는 펄벅여사가 구한말부터 해방까지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독립을 이루려는 한국인들의 꿈과 좌절
을 형상화한 소설.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라고
찬양한 펄벅여사는 동양문화에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1백여년전 우리 전
통문화와 풍속, 역사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독립투쟁을 벌인 한 가족 4대에 걸친
수난사는 오늘에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대원군과 민비의 세력다툼, 한
일합방과 3.1운동, 만주독립투쟁, 한국여인의 생명력에 이르기까지 우
리 근대사의 숨결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니까요.』.

소설제목은 아무리 짓밟혀도 살아남는 한국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봄마다 새순을 내는 대나무나 갈대에 비유했다. 이 소설은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 올 여름 미국과 한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아버지가 미처 못이룬 뜻을 완성하는 것은 제 사명이기도 하다』는
장교수는 『당신이 완성하지 못한 「미국문학사」를 마무리하고 아버지 호
를 딴 「우보번역연구회」를 만들어 더좋은 번역문화를 가꾸는 데 노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