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수나이 잊고 전국음식점 순례...50년 술인생 최대히트 ###.

임광행보해양조 회장은 요즘 술자리에서 애창곡으로 「김삿갓」을 불러
제낀다.

『죽장에 삿갓쓰고 방라앙∼ 삼천리, 흰구름∼따라 고개넘어 가는 객
이 누구냐∼.』.

얼마전 목포대학 명예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서 열린 만찬에서 어느
교수가 『끝소절 「…술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을 「…돌아오는
김삿갓」으로 바꾸시라』고 하자, 그때부터는 「돌아오는 김삿갓」에 액센트
를 강하게 주어 노래를 마무리한다.

고급소주 「김삿갓」이 한국능률협회로부터 올해 히트상품 본상을 타게
된데는 임회장의 김삿갓식 마케팅 전략이 톡톡히 한몫 했다.

지난 3월 「김삿갓」이 출범했을때 임회장은 77세의 나이를 잊고 자택
이 있는 목포를 떠나 서울-광주-대전-전주 등지로 「판촉 유랑」을 떠났다.

승용차 트렁크에 「김삿갓」을 가득 싣고, 와이셔츠 주머니에는 빳빳한
1만원권 지폐를 빼곡이 채워서 음식점과 유흥업소를 찾아다녔다. 서울에
선 양재동 신한국관, 논현동 한우관, 서초동 삼학도, 용산 역전회관 등
무려 5백여곳을 찾았다.

음식점에 김삿갓이 있으면 고개를 꾸벅 숙여 『고맙습니다』라고 인사
하고, 없으면 『제가 이 술을 만든 회사 회장입니다. 정성을 들였으니 한
번 팔아보시죠』라며 부탁을 했다. 음식점을 나올때는 종업원들에게 『택
시비로 쓰라』며 만원짜리 1장씩을 쥐어줬다.

임회장은 10년전 아들 임건우사장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뒤 보해의 연고지인 전남 목포에서 지역사회활동에 전념했다. 지
난 93년부터는 목포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있다. 하지만 5년전 고급소주
개발이 극비리에 진행됐을 때는 『50년 술장사 인생을 걸고 「김삿갓」 개
발에 몰두했다』고 말한다.

『아따, 그때는 잠자리에 누워 김삿갓 노래를 한번씩 불렀지잉. 5년간
불렀다고해도 과언은 아닐꺼여. 김병연에 관한 책도 여러권 읽었제.』.

임회장은 『지난 68년 보해양조가 은행관리로 넘어갔을때 가장 힘들었
다』고 회고했다. 당시 그는 9년간 넥타이 한번 매지못하고 뛰어다니며
회사를 회생시켰다.

『그때 목포 사람들이 보해소주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했고, 채권단도
상환일을 연기해줬제. 이제야 김삿갓으로 쬐끔(조금)이라도 고향분들 은
혜에 보답한 것같애.』.

임회장은 보해의 매실주 「매취순」에도 강한 애착을 갖고있다. 『내 평
생 매실주를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술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4년전 매취순의 물량이 달리자 임원들이 숙성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 팔자고 했을때, 『그렇게 하려면 모두 사표를 내라. 소비자를 기만
하려면 내밑을 떠나라』고 호통을 쳤을 정도.

그는 스물네살 창업때 목포 보해공장옆에 지었던 50평짜리 사옥을 아
직도 떠나지 않고 있다. < 윤영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