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황성준기자】 김일성은 45년 해방 직후 북한정부를 맡으
라는 소련군정의 권유를 거절했다가 소련군 장교들의 권총위협을 받은
뒤수락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군사고문이었던 게오르기 플로트니코프(73) 소련
군 퇴역대령은 29일 모스크바 중앙TV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붉은 왕조'에
출연, "김일성은 처음 조직활동을 두렵다는 이유로 북한정부를 맡는 것을
거부했으나, 치스차코프 장군(제25군 사령관)과 레베제프 장군(군사회의
위원)이 권총을 들이대며 '해 봐, 통치해 보라구'라고 강권했다"고 증언
했다.

플로트니코프 전북한 군사고문은 조선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이
야기는 90년경 조-소우호협회의 한 모임에서 고레베제프 장군에게 직접
들었으며,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지에도 실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북한 정보기관이 김일성 장수를 위해 소련 카프카
즈지방의 장수촌을 방문, 이를 연구해 보고 싶다고 부탁, 이를 주선한 적
이 있다"는 미하일 도쿠차에프 전KGB 제9국 부국장의 증언도 나왔다.

이번 북한 관련 다큐멘터리는 모스크바 중앙 TV방송이 김일성 사망
3주년을 맞아 특별 제작된 프로그램으로, 29일에는 김일성편이 방송됐으
며, 오는 7월6일 에는 김정일편이 방송될 예정이다.

29일 오후 방영된 첫편은 러시아 국립문서 보관국 자료와 알렉산드
르 카프토 전북한주재 소련대사, 테이무라즈 마마라드제 전소련 외무부
장관 보좌관, 미하일 도쿠차에프 전KGB 제9국 부국장, 알렉산드르 키셀료
프 전 북한주재 러시아 참사관, 게오르기 플로트니코프 전북한 군사고문
등의 증언을 통해 김일성의 생애와 북한 집권과정, 그리고 권력유지 과정
을 심층 해부한것으로서 "김일성은 스탈린과 소련 군정이 만들어낸 인물"
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김일성 건국신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진행자
인 레오니드 믈레친 중앙TV 해설위원은 가짜 김일성설을 소개한 뒤 북한
학생들이 배우는 김일성의 영웅적 항일투쟁사는 "진실과 조그만 관련도
없다"고 단언한다. 김일성은 만주에서 중국인 학교를 8학년 중퇴한 뒤 빨
치산부대에 합류했다가 41년 소련 영토로 도망쳐 온 인물이라는 것. 심지
어 믈레친 해설위원은 당치 빨치산 부대를 자처한 부류 가운데에는 사실
상마적이나 비적에 불과한 무리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날 방영된 내용에 따르면 소련 하바로프스크시 부근 뱌트스크 마을
에 주둔한 88특수여단에 소속되게 된 김일성은 한국인 여성 베라(김정숙
의 러시아 이름)에게서 장남 유라(김정일·42년생)와 슈라(둘째 아들·
44년생·47년 평양에서 익사)를 낳았으며, 보병학교 단기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김일성이 북한을 일제로부터 해방시켰다는 북한 당국의 선전과는
달리, 김일성은 45년 8월22일 소련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 평양에 들어갔
다.

김일성은 8월28일 제1차 평양 조선공산당 대회에서 소련 군정 장교가
적어 준 내용을 가지고 연설을 했으며 당시 김일성은 자신의 말을 몇 마
디추가했다가 소련군 장교들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여기서 이 프로그램은 "왜 소련은 소련 군정사령관 보좌관에 불과했
던 김일성을 북한 최고 지도자로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답한다.

스티코프 당시 연해주 군관구 정치위원이 보낸 보고서에는 김일성은
"골수부터 뼛속까지 소비에트 사람이며, 자식들이 우리나라(소련)에서 태
어난 빨치산"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박헌영과 같은 남로당 지도자들은
남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소련군 관계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했던 반
면, 김일성은 당시 자신의 관저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소련 대사관에 자
주 놀러와 술을 함께 마시고 당구를 즐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의
교육 정도가 낮은 것이 문제가 돼 소련 군정은 재소 한인들을 불러 김일
성에게 당과 정부 운용 방침을 교육시켰다.

김일성이 소련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은 56년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운동 이후. 권력기반을 다진 김일성은 소련으로부터 개인숭배 비판이
진행되자, 소련파를 제거하고 친중국 노선으로 전환했다. 그 이후 김일성
은 중-소분쟁 과정에서 이른바 '자주노선'을 견지할 수 있었다.

김일성 말년에 북한 정보기관이 소련 KGB의 협력 속에서 카프카즈 지
방장수촌을 방문, 장수 비결을 연구하는 등 김일성 생명 연장에 온갖 노
력을기울이나 김일성은 94년7월 저 세상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