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호는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작사가다.
박상민 '무기여 잘 있거라', DJ덕 '여름이야기' '머피의 법칙', 유
승준 '가위', 쿨 '해변의 여인' '운명', 구피 '많이 많이', 터보 '러브
이즈', 장혜진 '완전한 사랑'….
몇년 사이 젊은층에 인기 모은 수십개 히트곡에 그의 이름 석자가
따라 다닌다. 63년생 토끼띠, 우리 나이로 35세다. 어디가도 아저씨
소리 들을 법한 '쉰 세대'다. 나어린 중학생 가수-그룹이 판치는 가요계
에서야 더 말할 나위없다. 그가 구사하는 감각적 어법은 나어린 가요팬
을 사로잡는다. 제작자마다 그의 가사를 받으려고 줄 선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봐야 합니다. 사랑, 우정, 학교 폭력 모두 똑
같아요. 신세대가 공감하고 고민하면서도 꼬집어 말하기 힘든 걸 대신
표현하는 거죠.".
베스트셀러 소설부터 신세대에 관한 신문-잡지 기획물까지 닥치는
대로 읽는다. PC통신 대화방, 다운타운 클럽도 기웃거린다. 영화, 뮤
직비디오, 드라마에서도 아이디어를 찾는다.
"항상 눈과 귀를 열어놓고 소재를 찾아요. 곡을 들어보고 착상만
떠오르면 가사 만드는데는 보통 30분 이상 걸리지 않아요.".
음악 경력은 서울 남강중 때 록밴드 활동으로 거슬러간다. 전기기
타를 쳤다. 경희대 화학과에 진학해 그룹 탈무드 멤버로 활동했다. 2학
년때 탈무드는 제1회 문공부장관배 대학생 그룹 경연대회에 출전했다. 그
가 작곡-작사한 '안돼'로 대상을 받았다. 작사가로 주목받은 건 89년
김완선 빅히트곡 '삐에로는 우릴 보고웃지'를 쓰면서였다.
손무현, 윤상과 그룹 실루엣을 만들어 건반 주자로 활동하던 시절
이었다. 음반 제작에도 손 댔던 그는 95년부터 작사와 음반 기획에 전
념한다. 히트 가사는 대부분 이때부터 쏟아냈다.
"원래 전공은 작곡입니다. 작사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지 않기 때
문에 틈틈이 손을 댔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작품 의뢰가 밀리면서 작
사가로 이미지가 굳어졌죠.".
작품료는 '특 A급'을 받는다. A급이 편당 3백만원 정도니, 이를
웃도는 것으로 짐작된다. 해병대 대령 출신인 아버지 이찬규(65)씨는
'딴따라 한다는 장남'을 내놓다시피 했고 초등학교 음악교사였던 어머니
태정자(60)씨는 남편과 아들 사이에서 속을 태웠지만, 이젠 제일가는 후
원자다.
"무슨 노래가 뜨더라"고 조언까지 해준다고 자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