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차중운명 ##.

나동 정문 경비를 서고 있던 서영준은 식당 안에서 난 두 발의
총성을 들었다. 주방 쪽에서 약간의 소란과 함께 몇발의 총소리가
나는 듯 싶더니 실내 전등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다시 전깃불이
들어온 뒤에도 총성이 났다. 이때 어두컴컴한 현관 안에서 흰 와
이셔츠를 입은 어떤 남자가 황급히 나와 구관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몇 분 뒤에 김계원이 현관 문을 열고 서영준을 향하여 소
리쳤다.



사진설명:"실장일은 안해도 돼. 나하고 말동무만 하면 돼." 1978년 12월 초
비서실장 자리를 고사하던 김계원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한 말이다. 1979년 10월
26일 밤 8시경 김실장은 대통령의 승용차안에서 총을 맞고 숨져가는 박정희를 무릎에
누인 채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통령의 말동무는 저승길을 바래다주는 길동무가 되었던
것이다.

"빨리 들어와 각하를 병원으로 모셔라.".

급히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더니 오른쪽에 차실장이 쓰러져 있고
식탁뒤에서 대통령은 왼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데 머리쪽에서
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주방 안으로 권총을 난사하여 경호원들을 침묵시켰던 정보부의
두 저격수 유성옥과 이기주는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입구쪽에
아까 유성옥이 쏴서 쓰러뜨렸던 사람이 있었다. 무기를 회수하려
고 했는데 권총이 보이지 않았다. 경호원이 아니라 대통령 차 운
전사(김용태)였던 것이다. 가운데 조리대 밑에는 경호원 두 사람
이 피를 흘리면서 엎어져 있었다. "아이고 아이고"하는 신음소리
를 내고 있었다. 이 신음소리는 다섯 발을 맞은 경호원 김용섭이
낸 것이었다. 박상범 경호원은 총을 맞고 기절하는 바람에 옆에
있던 정보부 운전사 김용남이 "박형, 박형"하고 깨워도 죽은듯이
있더라고 한다. 박상범은 하체를 맞고 넘어질 때 머리를 조리대에
부딪쳤다. 이 충격으로 기절했을 가능성이 있다. 김-박 두 경호원
은 총을 뽑아들고 사격자세를 취하다가 피격되어 쓰러졌기 때문에
권총이 두 경호원의 손 바로 앞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유
성옥은 이두 자루 권총을 주웠다. 이때 현관쪽에서 비서실장이 부
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운전수 아무나 하나 빨리 와.".

유성옥은 운전사였다. 그는 주워올린 권총 두 자루 중 하나를
지하실에서 올라온 보일러공 강무홍에게 맡겼다. 나머지 하나와
원래 갖고 있던 권총을 허리춤에 차고 현관으로 달려가니 김계원
실장이 "차 빨리 대라"고 소리쳤다. 마당에 있던 대통령 승용차를
몰아서 현관에 바짝 댔다.

정보부 경비원 관리책임자 이기주도 유성옥을 따라서 주방에
들어갔다가 안방쪽에서 김계원 실장이 "얘들아 어서 들어와"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이기주는 안방으로 들어가려니 안이 컴컴
하고 해서겁이 났다. 주저하고 있는데 안방으로부터 사람의 두 다
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다리를 향하여 "꼼짝 마"라고 하면서
권총을 겨누는데 다리의 주인공은 차지철 실장임을 알게 되었다.
뚱뚱한 차지철은 넘어진 상태에서 눈을 뜨고서 한 손을 저으며 무
슨 말을하려고 하는데 들리지는 않았다.

이때 김계원 실장이 오더니 "이리 줘, 각하계신데 무슨 짓인가"
하면서 이기주의 권총을 빼앗아갔다. 이기주는 "차 실장이 아직 안
죽었습니다"고 말하면서 쏘라는 시늉을 했다. 김계원은 이때까지도
대통령이 피격된 것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이기주로부터 권총을
빼앗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보니 각하가 옆으로 쓰러져 있고 어깨
위 와이셔츠에 피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는 것이다(1심 진술).

"각하부터 모셔.".

이기주가 식탁 안쪽으로 보니 한 사람이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대통령이었다. 이기주는 남효주 사무관과 함께 대통령쪽으로 다가갔
다. 김계원은 경비초소에 있다가 불려들어온 서영준에게 "빨리 각하
를 업어라"고 소리쳤다. 서영준이 등을 갖다대니 김 실장과 이기주
남효주가 대통령을 들어서 업혀주었다. 이기주가 대통령을 뒤에서
받쳐들고 현관 앞으로 나왔다. 이미 현관 앞에는 유성옥이 슈퍼살롱
의 시동을 걸어놓고 운전대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김계원이 먼저
뒷좌석의 왼쪽에 타고 서영준은 대통령을 뒷자리 오른쪽에 누이니
김 실장이 머리를 받아 안았다. 서영준은 운전사 옆자리에 탔다. 김
실장이 소리쳤다.

"빨리 분원으로 가자.".

김계원 비서실장은 달리는 차중에서 피흘리는 대통령을 받쳐안고
서 앞자리에 탄 정보부 경비원 서영준에게 지시했다.

"무선 전화로 11번을 돌려. 사람이 나오면 수술준비를 하라고 해.".

서영준은 전화기를 여러번 돌렸으나 응답이 없었다. 김 실장은
"계속 돌려보라"고 재촉했다. "급하다 빨리 가자"라고 독촉하기도
했다. 서영준이 11번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경복궁 동쪽 국군보안사
령부와 붙어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 정문에 도착했다. 박정희는 정
문 도착하기 전 차중에서 운명했다. 김계원은 그러나 차중에서 박정
희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의식하지 못했다. 김계원은 품에 안긴 상
태의 대통령 얼굴을 보니 편안하고 상처도 없어 병원에 모시면 살릴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앞자리에 있는 정보부 경비원 서영준에
게 계속해서 전화를 독촉하느라고 대통령의 생사를 확인할 경황이
없었다. 김계원의 표현을 빌리면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일분 일초
가 바빴다'. 유성옥은 '차를 몬다고 신경쓸 겨를이 없었습니다만 가
느다란 신음소리는 들은 것 같습니다'라고 증언했다(1심 법정 진술).
유성옥은 또 '병원 정문에서 "나 비서실장이야"하는 말을 듣고서야
실장님인 줄알았다'는 것이다.

저녁 7시55분쯤 서울지구병원 임상병리과장 송계용 소령은 병원
현관쪽에서 자동차 클랙슨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다. 세 사람이 들어오는데 한 사람이 등에 환자를 업고
자신의 양복외투로 머리를 덮었다. 그 뒤를 따라서 키가 작고 뚱뚱
한 사람이 고함을 지르면서 들어왔다. 송 소령은 곧 김계원 비서실
장임을 알아보았다.

"군의관 있는대로 다 나와. 수술 준비해…. 아직 수술할 준비가
안되었나. 뭘하고 있나.".

뛰어나온 송 소령은 외과 군의관 정규형 대위와 함께 영문을 몰
라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었다. 김 실장은 "이 사람 살려야
돼"라고만 연거푸 소리쳤다. 송 소령과 정 대위는 환자를 응급실로
데리고가서 응급대 위에 누이고 맥박을 재면서 시계를 보았다. 환자
의 시계도 풀어놓았다. 오후 7시58분이었다. 혈압, 맥박, 호흡은
죽어 있었다. 동공의 반사도 없었다.

"돌아가셨지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정규형 대위가 말했다. 차를 주차시키고 들어온 유성옥은 대통령
을 인공호흡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저런 모습이면 각하로 보기
는 어렵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눕혀놓으니 얼굴이 퍼져서 다른 사람
같았다.

"보안을 유지하라. 이곳 출입을 금지시켜라.".

김계원 실장은 사망이 선고된 박정희의 시체를 둘러 싸고 있는
군의관들에게 말했다. 그는 군의관들이 이 병원에 자주 온 대통령의
얼굴을 알고 있어 죽은 사람이 박정희임을 당연히 알게 되었을 것이
라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김계원이 병원을 나가는데 유성
옥이 말했다.

"차가 없는데 무엇으로 가시렵니까." "아무 거나 타고 가지. 철
저히경계하게."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