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전 11시30분, 울산 코리아나호텔 커피숍.
부부 간첩 최정남(35)-강연정(28)이 지역 재야단체의 정모(36)씨와 자리를 함께하 는 순간이었다. 커피숍과 주변에 자리잡고 있던 30여명의 안기부 요원 들이 일제히 권총을 빼 들고 세사람을 겨냥했다. 요원들이 덮치자 여 간첩은 "여보, 여보…"란 외마디 소리를 냈고, 남편 최정남은 별다른 반항없이 수갑을 받았다.
안기부가 부부 간첩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것은 10월21일. 재야단체 의 정씨에게 "북에서 왔는데, 공화국(북한)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는 '남녀'의 얘기를 경찰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정씨가 자신을 찾아온 남녀와 있었던 얘기를 울산 중부경찰서에 신고했고, 이 정보가 안기부에 들어갔다. 안기부는 곧바로 내사에 착수했고, 이들 '남녀'와 정씨가 27일 두 번 째 만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씨는 이를 사전에 당국에 알리지 않아 검거 현장에서 매우 당황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안기부는 고영복 교수와 심정웅씨 일가 등 고정간첩 색출에 성과를 거뒀지만 수사 발표까지 약 3주 동안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야했다. 검거 현장에 있던 세 사람중 여간첩은 자살하고, 신고자 정씨가 '돌 출 행동'(안기부 표현)을 하면서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정씨는 첫만남 다음날인 10월22일과 부부 간첩 검거 4일 뒤인 31일 2차례 기자회견을 갖고, '북에서 온 남녀'와 있었던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안기부는 "공범이 달아날 우려도 있고, 사건 전모 파악에 시간 이 필요하다"며 각 언론사에 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수사를 진행해 왔다.
안기부 관계자는 "하지만 일부 언론이 부부 간첩의 검거 사실 등을 보도, 11월20일 부부를 태우러 오려던 '귀국선'을 유인하는 데 실패하고 공범 수사에 상당한 차질이 발생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사 차질은 안기부의 '실수'도 한몫을 했다.
여간첩 강이 압송 다 음날인 10월28일 자살을 기도, 병원으로 옮긴지 사흘 만에 숨진 것이 다. 안기부는 체포 순간 자결을 방지하기 위해 부부 간첩의 입에 재갈 을 물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수색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안기부는 만년필 뚜껑형과 립스틱형 독약 앰플 2개를 발견했다.
안기부는 금이빨 등에 앰플을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X레이 촬영 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은 검거 다음날인 28일 아침 용변을 보러 가겠다고 요청, 수사관의 입회 하에 조사실에 딸린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 돌연 항문 속에 숨겨 두었던 마지막 앰플을 꺼내 물었다. 수사관이 급히 제지, 입 안에서 앰플이 터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이미 가스 일부를 들이마신 강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강은 즉시 모병원으로 후송됐고 미국에서 공수해 온 해독제까지 썼지만 뇌사 상태에 빠져 있다가 나흘 만인 31일 숨졌다.
안기부는 강의 사망 이후 남편 최가 잡히지 않은 것처럼 북측과 통신을 계속했지만, 북한은 이를 믿지 못한 듯 별도 임무와 보고 체계를 가진 부인 강의 보고를 계속 지시했다. 북측이 강의 보고를 받지 못하면 서 '변고 발생' 사실을 짐작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안기부는 그러나 수사 보안이 좀더 잘 지켜지고 여간첩의 진술을 받아냈더라면 보다 나은 성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안기부는 특히 최초 신고자 정씨에 대해서는 통상 1억원의 포 상금을 주던 것과는 달리 "아직은 포상금을 줄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