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1월23일. 뮤지컬 배우의 꿈을 안고 서울시립가무단에 입단했
다. 신당동 비좁은 연습실을 거쳐 그해 4월 완공된 세종문화회관으로
이사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2백평이나 되는 넓은 연습 공간을 본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입단 2년만에 큰 행운이 돌아왔다.


사진설명 :
80년 데뷔작 '판타스틱스'에 남자 주인공 마트로 출연한 남경읍씨.

정기공연 '판타스틱스' 남자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4개월간 모든
것을 걸어보자는 각오로 연습에 임했다. 연습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4시까지였지만 오전6시면 연습실에 나왔고 밤 11시가 돼야 들어갔다.

당시 오후 9시면 연습실 전등을 껐다. 그러면 분수대 가로등 불빛
으로 대본 연습을 했다. 형설지공이 따로 없었다. 의지가 약해지면
캡슐을 없앤 마이신 가루약을 삼켰다. 쓰디쓴 맛을 혓바닥에서 느끼며
와신상담을 떠올리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지만 그때는
진지했다.

삭발도 했다. 나름대로 자신 있었지만 연출자(배규빈)는 가혹했다.
자존심이 송두리째 뿌리뽑힐 만큼 몰아세웠다. 너무 긴장했던지 어느
날은 연습실에서 쓰러진 적도 있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마자 자기
몸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쫓아냈다.

연습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대낮에 광화문 네거리 가로등을 부둥켜
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하지만 결국 그분의 강한 질책 때문에 지금은 어
떤 어려움이 닥쳐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의욕만으로 가득찬
시절이었다.

당시 뜻맞는 젊은 단원 10여명이 모여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다.

오전6시 현대무용 레슨을 받고 오후에도 시간을 쪼개 기계체조, 발
레, 한국무용을 함께 연습했다.

오전10시부터 정오까지는 가무단 기본연습인 합창과 한국무용을 배
웠고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 전공 분야와 비전공 분야를 바꿔가며 공부했
다. 피아노와 성악은 따로 개인지도를 받았다.

세종문화회관 곳곳에는 뮤지컬 스타의 꿈을 키우며 보낸 추억들이
배어있다. 수십 개가 넘는 분장실은 훌륭한 개인 연습실이었다. 당시
1억원 넘는 스타인웨이 송 피아노도 내 손 때가 많이 묻었다. 비상구 계
단은 탭댄스 연습장, 화장실은 발성 연습장이었다.

서울시립가무단에서 보낸 5년은 오늘 나를 있게 한 중요한 자양분
이 됐다. 내년이면 뮤지컬에 입문한지 만 20년이 된다. 처음 품었던
열정만 간직한다면 무대에서 크게 욕은 먹지 않을 것같다.

< 뮤지컬 배우 >.

▲58년 경북 문경 생
▲환일고, 서울예전 졸업
▲서울연극제 남우주연상(94년 '번데기')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96년'사랑은 비를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