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문, 장면계인사 접촉 "혁명하자" ##.
국회에서 선출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임기는 1952년7월23일에 끝
나게 되어 있었다. 1952년 전선은 38도선에서 고착되어 소모적인 고지
쟁탈전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전해 여름부터 판문점에서는 공산군측과
유엔군측이 휴전회담을 지루하게 전개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독립운동
을 할 때부터 공산주의를 콜레라균에 비교하여 "인간은 호열자와 타협
할 수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휴전회담이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자 이대통령은 "더운 밥을 먹고 식은 소리를 하고 있다"며 노골
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한국을 따돌린 휴전협상을 성사되도록 내
버려두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이 대통령을 미국정부는 걸림돌로 인식하
기 시작했다.
육본 작전국의 장교들. 앞줄 왼쪽이 이용문국장, 오른쪽이 박정희 차장, 뒷줄
왼쪽체서 두번째가 5.16 주체 유원식.
이승만은 1952년1월18일 일방적으로 동해에 평화선을 선포하여 세
계를 놀라게 했다. 2월12일 미국은 평화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이승만
에게 통보했다. 이승만 대통령도 미국의 싸늘한 시선과 음모를 예민하
게 인식하고 있었다.
1951년5월4일 3인칭으로 쓰여진 이승만 대통령 일지에는 이렇게 적
혀 있다.
.
1951년11월 이승만은 대통령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
을 국회에 제출했다. 다음해 1월18일 이 개헌안은 찬성 19, 반대 1백43,
기권 1로 무참하게 부결되었다. 야당연합세력(원내 자유당, 민국당,민
우회)은 4월17일 내각책임제로의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서명한
의원숫자가 개헌정족수인 1백23명이나 되었다. 정상적인 절차로는 이
승만 대통령의 재선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무초 미국대사는 2월15일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이승만에 대항
할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는 이범석 신익희 장면 허정 가운데 "최선의
희망"은 장면이다'라고 했다. 3월3일 주한미국대사관은 '현행 헌법하
에서 선거가 이루어지면 이승만이 재선될 가능성은 50%이하이다. 이승
만, 신익희, 장면은 똑 같은 확률을 갖고 있다. 미국의 국익에서 판단
할 때 장면의 당선이 가장 바람직스럽다. 그는 이승만에 비해서 합리
적이고 유순하다'고 했다. 무초의 미국대사관은 장면 총리의 선거지원
본부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그 전략의 핵
심은 이승만이 경찰, 특무대, 헌병 같은 수사기관과 청년단 및 우익
단체를 이용하여 국회의원들을 협박하지 못하게 견제하는 것이었다.국
회의원들이 자유의사로 투표할 수만 있도록 해주면 장면의 당선이 가
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국회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갔다'고 판
단하고 대응에 나선다. 4월20일 그는 '무초의 사람'인 장면 총리를 해
임하고 후임총리에는 '경찰의 대부' 장택상을 지명했다. 내무장관에는
민족청년단의 설립자 이범석, 국방장관에는 신태영을 임명했다. 5월14
일 이승만은 재차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김성수
부통령은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을 낸 뒤 사직서를 제출하고는 부산
항에 정박중인 미군 병원선으로 피신했다. 미국 대사관은 김성수와 장
면에게 신변안전을 위한 성역을 제공하고 있었다.
5월10일 새벽3시쯤, 부산 동대신동에 있는 선우종원(변호사·전 국
회사무총장)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반공검사로 유명했
던 선우종원은 장면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 일하다가 한 달 전 퇴직했
었다. 장면 전 총리와 함께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고 있던 선우씨는 신
변의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경비원이 잠이 든 선우종원을 깨우더니
"웬 미군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군이?"라고 말하면
서 선우종원은 뜨락으로 나갔다.
"지금이 어느 땐데 쿨쿨 잠만 자?".
어깨를 툭 치면서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미군이 아니라 이용문 육
본 작전국장이었다. 얼굴은 희고 키는 크고 눈이 노란 이준장을 경비
원이 미군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이용문은 선우씨의 평양고보 두 해
선배였다. 이용문은 "지금 대구 육본에서 총장차를 몰고 달려오는 길
이야"라고 하면서 지프의 3성장군 표지판 덮개를 벗겨 보여주었다. 선
우씨는 이 장군을 2층으로 안내했다.
"우리 같이 혁명하세.".
선우씨가 엄청난 말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으니 이용문은
다그치듯 말했다.
"우리 손잡고 이박사를 뒤엎어버릴 쿠데타를 하자는 거야. 너희쪽
사정은 어떤가."
"우리라니? 선배님 말고 많은 장군들이 가담하고 있습니까.".
"아니야. 자넨 왜 쓸데없는 데 신경을 쓰나. 너희들이 찬성하면 장
면 박사를 추대하고 곧 혁명일으키겠어."
"난 못합니다. 민주주의란 수단과 절차가 중요한데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더구나 우리 집안은 3대째 천주교 신자입니다.".
"야, 이 사람아, 이런 판국에서 페어플레이가 있을 수 있나? 조금
도 주저하지 말고 거사하세. 참모총장도 알고 밴 플리트 8군사령관의
묵계도 받아두었어.".
이들은 두 시간 동안 토론했다. 후배인 선우씨가 설득당하지 않자
이 장군은 탁자를 꽝 치면서 일어났다. 희끄무레 동이 터오는 바깥으
로 나가는 이 준장에게 선우종원이 말했다.
"선배님 오늘 일은 내 목숨 다하는 날까지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자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렇지 않다면 내가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야.".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리곤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 (*이동욱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