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난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런 얘기를 할 것입니다/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잘 알려진 로버트 프로스트 시 '가지 않은 길'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 시가 새삼 떠오른 건 지난4일 개봉된 '탱고 레슨(Tango Lesson)'
을 보고나서입니다. 이 작품은 정말 의미 다양한 층위를 지니고 있습니
다. 멋진 탱고영화이면서 품위있는 페미니즘 영화이고, 영화에 대한 영
화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겐 무엇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있는 영화로 다가왔습니다.

영국 여자감독 샐리 포터가 연출하고 실명으로 출연한 '탱고 레슨'
에서 탱고와 영화는 수시로 얽힙니다. 중반까지는 파블로가 샐리에게
탱고를 가르치지만, 후반엔 샐리가 파블로에게 영화를 가르칩니다. 탱
고댄서 파블로는 영화배우를 꿈꿔왔고, 영화감독 샐리는 탱고를 동경했
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결국 춤이 생활인 남자와 영화가 삶인 여자가
서로를 통해 꿈을 추구해가는 과정을 그렸다고 할 수 있지요.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건 바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
입니다. 둘은 상대 꿈을 직업으로 갖고 있으니까요.

서로에게 끌린 뒤 파블로는 집에서 영화감독 샐리를 생각하며 말론
브랜도 전기를 읽지요. 샐리는 유태인 파블로를 생각하며 유태인 철학
자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읽고요. 그렇게 둘의 사랑은 시간을 소
거해 머나먼 과거 갈림길로 다시 달음박질쳐 가려는 소망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무리 미련이 남아도, 갈린 순간으로 되돌아가 저
쪽 길에 들어서는 게 최선이 아님을 말합니다. 격렬히 다투던 두사람이
사랑과 행복을 되찾는 것은 잊었던 꿈을 실현할 때가 아니라, 각자 자
리에 성실하게 남아있을 때이니까요. "당신은 나, 나는 당신"이라는 샐
리 노래말은 부버의 '나와 너'를 슬쩍 끌어들이며 가지 않은 길과 걸어
온 길이 결코 둘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탱고 경연대회에서 함께 춤춘 뒤 파블로에게 호된 질책을 들은 샐리
에게 누군가 위로하지요. "처음 치곤 잘했다"고요. 그 말은 '한번 꿈꾸
어 본 것 치곤' 괜찮았다는 말로 들립니다. 거기서 영화를 버리고 탱고
만 고집했다면 샐리는 결국 꿈의 자리마저 잃고 말았겠지요.

지금 이대로를 사랑하고 살면서, 가지않은 길을 마음의 고향으로 두
고 안식을 취할 수는 없습니까. 미처 가지못해 그리움의 공간으로 꿈이
남아있다는 게 위로가 되지 않나요. "흔적없이 사라지는 게 두렵다"는
파블로 말에 샐리는 "그래서 우리가 만난 것"이라고 답합니다. 둘의 사
랑처럼 현재에 대한 성실함과 꿈에 대한 그리움이 제 위치에서 만날 때
비로소 삶은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겠지요.

(* djlee@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