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통틀어 한국미술사 연구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는 위
창 오세창(1864∼1953) 선생의 '근역서화징'이 출간70년만에 우리말로 완
역됐다. 근대 한국 최고의 한국미 감식안으로 평가되는 위창이 삼국시대
솔거 이후 역대 서화가의 사적과 평전을 수록한 사전 형식의 이 책은 '한
국미술사의 시작이자 끝' '미술사학도의 성전'이란 평을 들어왔으나 한문
으로 돼 있어 일반인은 쉽게 접하지 못했다.
김보경 김상엽 김인규씨 등 유도회 소속 동양고전학회의 젊은 연구자
9명은 5년간의 공동 작업 끝에 이 책을 완역, 다음주 시공사에서 3권의
책으로 출간한다.
한말 역관 출신 개화사상가 오경석의 아들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
인의 한사람이기도 했던 위창은 부친과 자신이 수집했던 방대한 양의 문
헌-서화 자료들을 토대로 '근역서화징'을 저술, 최남선의 권유로 1928년
출간했다.
'근역'이란 물론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 위창은 이 책에서 그때까지
의 모든 기록에 나타나는 역대 서화가들(1천1백17명)을 신라, 고려, 조선
(상-중-하)의 5장으로 나누고 출생연도순으로 배열, 자-호-본관-가세-출
생연도-수학(사제관계)-관직-사망연도 등을 소개하고 각 서화가들의 예술
에 대한 기록과 논평을 싣고 출전을 밝혔다. 이같은 작업은 위창 이전이
나 이후에는 없는, 오직 한학과 서화에 두루 통달했던 위창만이 할 수 있
었던 업적으로 평가된다. 광복 후 나온 '한국서화인명사전'이나 대부분의
서화사 연구가 '근역서화징'에 수록된 인물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위창은 특히 방대한 서화사 자료를 체계화하면서
서화가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품평은 최대한 자제, 기록에 충실함으
로써 '근역서화징'의 자료적 가치를 높였다.
국역 '근역서화징'의 기획자 중 한사람인 홍선표 시공사 한국미술연
구소장은 "이 책이 70년 만에야 완역됐다는 것은 그동안의 한국미술사가
그만큼 뿌리와 족보에 대한 의식이 미약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
다.원본'근역서화징'이 문학 철학 서화 등 워낙 다양한 분야에 걸친 옛문
헌들을 인용했기 때문에 국역에도 그만큼 시간과 어려움이 따랐다고 번역
자들은 밝혔다. 원로 한학자 홍찬유 선생이 감수한 국역본은 원본'근역서
화징'이 인용한 출전과 관계 문헌들을 일일이 찾아 대조-확인, 2천4백여
개의 역주를 달았으며 위창의 저술 중 잘못된 곳도 350여곳 수정했다.
또 원본에는 실리지 않았던 관련 작품 도록 102점과 8천여 항목에 이
르는 인명-용어 색인을 수록,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안휘준 서울대 박물관장은 "원저 이상의 의의와 가치를 지닌 국역본
이 발간됨으로써 한국 서화사는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
다.